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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중 전투식량 몇가지.

http://GLOB.egloos.com/2615128

전투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급해야할 3B.
1. Bean - 식사
2. Bullet - 탄약(무기)
3. Bandage - 붕대(의료지원)
--- 오래된 보급관련 부서의 경구.

근대와 현대 군대에서 지급되는 식량은 통상 다음 범주에서 출발합니다.

1. 주둔지 지급 식사(garrison ration)
2. 전투 식량(combat ration) 혹은 오래된 표현대로 행군 식량(marching ration).
3. 일반적 상황을 벗어난 특수식. (생존, 병원, 포로등등)

1의 주둔지 지급 식사는 간단히 말해서 짬밥 되겠습니다.
가지고 있는 재료가지고 적당히 요리한 그런 물건이고 보통 그 사회의 중류정도에서
먹는 수준에 맞춰지면 다행인 그런 겁니다.
물론 맛이야 '괜찮은데' 보다는 '맛있으면 다행이게? 죽지 못해 먹는다!' 가
일반적이지만 말입니다.
오늘 식사는 먹을만 하지 말입니다.
기자들이 왔거든여.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coffee's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커피가 괜찮다고 말했대요.
It looks like muddy water and tastes like turpentine
흙탕물같고 맛은 테르빈유같아요.

(다른 버젼)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coffee's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커피가 괜찮다고 말했대요.
It's good for cuts and bruises and tastes like iodine
베고 타박상에 좋은데다 맛은 요드 소독약 같아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chow is mighty fine
걔들이 군대밥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a chicken jumped off the table and started marking time
닭이 식탁에서 뛰어내려서 기다리고 있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chicken's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닭고기가 괜찮다고 말했대요.
One jumped off the table and killed a friend of mine
식탁에서 떨어진 것에 맞아 내 친구가 죽었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biscuits are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빵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one rolled off the table and killed a friend of mine
식탁에서 떨어진 것에 내 친구가 맞아 죽었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training's might fine
걔들이 군대 훈련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last night there were ten of us, now there's only nine
어제 밤, 열명이던게 지금은 아홉이래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pay is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월급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they give you a hundred dollars and take back ninety-nine
걔들은 100달러 주더니 99달러는 가져가버렸대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shoes are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신발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You ask for size eleven, they give you size nine
니가 11문을 달라하면 걔들은 9문을 줘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pancakes are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팬캐익(핫케익)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You can try to chew them, but you're only wasting time
그거 씹는다고 시간만 날려버렸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bed's are mighty fine
걔들이 군대 잠자리가 괜찮다고 말했대요.
But how the hell would I know, I've never slept in mine
근데 얼마나 지옥같은지 난 푹 자보질 못했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mail is so great
걔들이 군대 편지가 괜찮다고 말했대요.
Today I got a letter dated 1948
오늘 난 1948년에 쓰여진 편지를 받았어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hours are just right
걔들이 군대 시간이 괜찮다고 말했대요.
Start early in the morning and work on through the night
아침일찍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일한대요.

(후렴)

They say that in the Army the tents are waterproof
걔들이 군대 텐트는 방수라고 했대요.
You wake up in the morning and you're floating on the roof.
아침에 일어나보니 지붕위에 떠있대요.

(후렴)
Oh Lord, I wanna go
오 신이시여, 난 가고싶어요
But they won't let me go
근데 쟤들이 못가게 해요.
Oh Lord, I wanna go hoo-hoo-hoooome EH!
신이시여, 집에 보내줘요.
--- 미군 군가(cadence)중 They Say That In The Army중


2번의 경우는 바로 먹을 수 있는 저장 식품이 나오면서 본격화된 겁니다.
그 전에는 1과 2의 경계가 모호했죠.

이런터라 때때로 긴박함 덕분에 식사를 거를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가령 워털루 전투 당시 전장으로 동원된 많은 영국군들은 - 프랑스군이나 독일군
일부도 마찬가지였지만 - 행군한다고 지급받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전투에
투입됩니다.
어느정도였냐면 밥먹자고 지급된 고기가 익기도 전에 행군 시작이 명령됐고 덕분에
익고있던 고기 전부가 버리져 버립니다.
결국 전투 전날 겨우 목적지에 도착해서 젖은 땅에서 가까스로 잠을 자고 일어나
아침조차 제대로 못먹고 전투에 투입되죠.

그리고 1이라고해도 이전 시대라면 그럭저럭 먹을만한 수준이 나온건 아닙니다.
오래 보관이 가능해야 한다는 것과 경제성, 식량 조달자들의 경직성은 재료를 상당히
빤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꽤나 오랫동안 1일에 이정도 양의 음식물이 지급됐으니 말입니다.

1. 1 ~ 1.5파운드 가량의 빵이나 비스킷 혹은 그에 준하는 곡물 가루 또는 그 가공품

2. 1파운드 가량의 육류 (통상 염장)

3. 1/2파운드 가량의 콩이나 야채나 근채류등.

4. 기타 온스 단위의 치즈나 버터, 식초와 같은 품목

5. 술, 이건 맥주냐 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맥주 기준으로 1리터 안되는 양이
   나옵니다.

이중 빵과 고기는 필수적이었고 다른건 양을 줄여도 이건 더주면 더줬지 덜주지는
않으려곤 합니다.
다만 그럴려고 했다지 실재로 그랬다는 아닌게 좀 뭐하지만 말입니다.

한편 1의 경우는 사실 빵이나 건빵과 같이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줄 수도 있지만 그냥
밀가루를 줄 수도 있고 귀리와 같은 다른 잡곡의 가루를 줄 수도 있습니다.

빵의 경우는 야전 제빵소가 만들어져 화덕에서 구워지며 이렇게 만들어진 빵이
지급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빵의 질이 그렇게 좋을리도 없는데다 상황이 나빠지거나
돈때먹기 좋아하는 운영자에게 걸리면 질은 더욱 요상해졌습니다.
톱밥따위가 들어간다거나 석회가 들어가는 일까지도 벌어졌으니.
또한 제빵소에서 병사들의 손까지 들어가는데 어느정도 걸릴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었죠.

더욱이 요즘의 식빵과 달리 이 시기의 빵이란건 손으로 그저 때서 먹는다가 통하지

않는 그런 물건이었죠.
심지어 군대빵이 아니라 민간의 빵마저도 그걸 손으로 찢어낼 수 있으면 성인
취급해준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딱딱하고 질겼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이런 것이라도 빵이랍시고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인거죠.
야전 제빵소가 운영되고 거기서 빵이 올 정도면 일단 굶을 일은 적은거니.

건빵은 오랜기간동안 병사들과 선원들을 먹였던 것이고 그 역사또한 오래된 것입니다.
이미 로마 시대때 군에서 비슷한걸 만들어 먹은 경우가 있는데다 오래 저장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1차대전때까지 애용됩니다.
물론 지금도 이런 류의 밀가루 덩어리를 구운 물건은 여전히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2차대전 이후로는 부수다가 손 다쳤다는 소리는 안나옵니다.

아마도 영국 선원들의 음식에 대한 속어인 tack에서 출발한 hardtack 이란 단어외에
그저 biscuit, hard bread, ship biscuit, sea biscuit, sea bread등으로 불립니다.
동네에 따라서는 비슷한 류의 물건을 츠비박(zwieback)이라 부르기도 하죠.
별명도 이빨을 무디게 하는 것(tooth duller)니 철판(sheet iron),  벌레성(worm
castle)등이 붙여지기도 합니다.

이 건빵은 비스킷이란 말이 말해주듯 2번 구운, 즉 가급적 습기를 최대한 제거한 빵과
비슷한 물건이다란 의미입니다.
전통적인 제조법은 밀가루를 약간의 소금과 혼합해 반죽하고 이걸 두께 1/2인치,
가로세로 3인치의 사각형이나 지름 3인치의 원형으로 만들고 여러 개의 구멍을 낸 다음
오븐에서 구워서 살짝 말린 다음 다시 굽는 겁니다.
이러면 내부에 습기가 거의 사라지며 아주 단단해지죠.
이건 1784년의 쉽 비스킷.

얼마나 단단했냐면 이걸 깨다 손다쳤다는 소리부터 돌이나 소총 개머리판으로 깨트려야
한다거나 맨이빨로 씹다간 이빨이 나간다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이걸 경험하고 싶으신 분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래떡 있죠?
그걸 전자렌지에서 타지 않을 정도로 잘 돌려준 다음 완전히 식으면 한번 씹어보시길
바랍니다.
별로 다를 것도 없습니다.

여튼 이 건빵은 오래 간다라는 점 때문에 군대의 저장식량으로 자주 사용된데다 특히
2번의 행군 식사에 곧잘 나오던 품목이었습니다.
빵보다 부피도 적고 저거 2개나 3개면 하루치 식사가 됐거든요.
더욱이 이건 제빵소를 만들 필요도 없고 일치감치 공장에서 대량생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이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것만 주면 병사들도 인간인데 가만히 참을 수가 없죠.
식사 거부같은 방법까지 동원됩니다.
그러니 이런 건빵도 적당히 상황봐가면서 줬다는거죠.

This the song that is uttered in camp by night and day,
이 노래는 병영에서 주야에 걸쳐 불려졌던 노래라네.
This the wail that is mingled with each snore.
이 울부짖음은 코고는 소리에 섞여있네.
This the sighing of the soul for spring chickens far away,
이 영혼의 탄식은 도망친 닭을 위한 것이라네.
Oh hard crackers, come again no more!
건빵이여, 이제 그만!
This the song of the soldier, weary, hungry and faint,
이 노래는 지치고 배고프고 무기력한 병사의 것이라네.
Hard crackers, hard crackers, come again no more;
건빵, 건빵 이젠 그만.
Many days have I chewed you and uttered no complaint,
수많은 날동안 나는 씹었고 진정 불평도 안했다네.
Hard crackers, hard crackers, come again no more!"
건빵, 건빵, 이젠 그만.
--- 남북전쟁 당시 병사들간에 불렸던 노래중.

건빵은 그냥 먹기보다는 어떤 식으로건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다른 재료와 함께
요리했고 곧잘 써먹었던 요리법은 적당히 돌(개머리판)로 쳐서 부스러트리거나 해서
물이나 차, 국물등에 담궈 불려 먹거나 아니면 고기의 지방분등을 첨가해 같이 끓여
먹는 것이었죠.

'적당한 용기에 건빵 1조각, 베이컨 1/3 파운드를 넣는다.
 그리고 베이컨에서 기름이 베어나와 건빵에 스며들 때까지 볶다가 커피를 반잔 정도
 부어준다.'
--- 남북전쟁중 coosh(혹은 cush)라고 불렸던 건빵 요리법

'식사조(mess mate)의 건빵을 모래 주머니에 담는다.
 그리고 이걸 땅에 묻고 물을 뿌린 다음 그 위에 불을 피운다.
 모래 주머니를 꺼내 총검으로 잘라내고 상황에 따라 건포도나 건조과일류, 연유등을
 곁들여 먹는다.'
--- 1차대전중 영국군의 건빵 요리법중, 그나마 불을 피울 정도로 좋은 환경일 때.

육상에서보다 불을 피운다든지 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배에서라면 이 건빵은 더욱
처참한 요리법으로 변형됩니다.
그냥 물에 적당히 불리고 어떻게 그 염분을 제거할 수 없는 염장 고기 조각을 곁들인
다음 여기에 식초따위를 쳐서 이걸 럽스카우스(lobscouse)니
스킬리골리(skillygolee)같은 이름을 붙여줍니다.

한편 이 건빵은 육상에서건 해상에서건 언제나 바구미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영국 해군처럼 캐러웨이(caraway)의 씨를 추가한다든지 미국인들처럼 상자를 알코올로
충분히 소독하고 담는다든지 하는 시도를 해보기도 하나 언제나 실패했고 덕분에 worm
castle같은 별명이 붙여질 수 밖에 없었죠.
남북전쟁당시, 식료품의 제조와 검사.
나름대로 상당히 노력은 했으나 전선에서는 언제나 불만.

덕분에 해상처럼 보유식량에 제한이 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이런 것이라도 먹을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밤에 눈딱감고 먹던지 아니면 먹기 전에 가급적 안속에 있는 바구미가 모누 나올
때까지 어딘가 대고 쳐서 털어내고 먹어야 했죠.
한가지 좋은 점이라면 바구미가 속에 구멍을 내서 부숴트리기 좀 더 쉬워진다는
점이랄까요.

그리고 이런 빵과 건빵외에 곡물 가루 혹은 볶은 곡물가루(미숫가루 비슷한)종류가
지급되기도 합니다.
이걸로 즉석에서 fire cake를 굽거나 죽(오트밀)따위를 끓여먹기도 하죠.
fire cake는 오늘날 인도등에서 화덕등에 붙여 만드는 자빠띠나 난과 비슷한 방법으로
만든 빵입니다.
돌판이라든지 이런데다 밀가루 반죽을 바르고 불옆에 두고 굽거나 총검 따위에 밀가루
반죽을 꼽고 불에 바로 굽는 것이죠. (로마군들도 해먹던 오래된 방법중 하나입니다.)

한편 일부 지역 - 이탈리아 - 에서는 파스타와 같은 밀가루로 만든 저장식품이
등장합니다.
이건 건빵처럼 조리된 것이 아닌 그냥 말린 밀가루 덩어리나 판자 조각으로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적당한 냄비만 있다면 뜨끈한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죠. (파스타라
하면 국수형태만 생각하지만 항상 그런 것만 있던건 아닙니다.)

여담이지만...
간혹 우스개로 2차대전중 사막에서 이태리군을 구원하기 위해 독일군이 달려갔더니
파스타 데치고 있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냥 듣고 웃으시고 진실로 믿으시면 좀 곤란합니다.
식당처럼 정성스럽게 파스타를 소금물에 삶고 건져서 소스에 비빈다거나 하는건 물있고
시간있을 때나 할만한 일이고 보통 저 군대에서 나온 물건은 잡탕의 재료로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위에 건빵가지고 고기 지방과 물로 불려서 먹듯이 저 파스타라는 놈도 비슷하게
활용됩니다.
건빵 대신 파스타가 들어간다는 것만 다른 것 뿐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제조비용이 더 싸게 먹히는 장기 보존식품이랄까요? (굽는 과정이
빠지니)

고기는 염장 고기가 압권입니다.
당시엔 냉장시설이 없었고 신선한 고기를 운반해서 줄 수 있는 기간은 도축후 일주일
이내였으니 천상 염장하는게 최선의 방책이었죠.
그렇다고 이 염장 고기만 줄창 준건 아닙니다.
끌고 다니거나 혹은 주변에서 구입된, 아니면 군대말로 위치이동되거나 원주인에게서
해방된 가축을 도축하여 지급했으며 여기에는 소나 양말고 말이나 노새등도
포함됩니다.
뭐 때에 따라서는 총검에 꾀어 불에 구운 쥐고기도 먹은 판인데요.

여튼 이 염장 고기란게 그저 소금에 절인 수준이 아니라 소금에 고기를 파묻었다할
정도였고 반쯤은 마른 것같은 정체 불명의 덩어리였다 하죠.
색깔도 시퍼렇게 변색된 경우가 흔했고 오늘날 정육점에서 팔았다간 망하기 좋은 털이
아직 남아있는 껍질이나 흙과 같은 오물따위도 있었죠.
당연하게도 맛이 아주 괴로울 정도로 없었답니다.
씹으면 뭔가 연골을 씹는듯한 느낌이었다는데...

베이컨이라 불리던 물건 자체도 우리가 상상하는 훈제되고 얇게 저며진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답니다.
염장된데다 훈제는 흉내만 냈을 수도 있거나 아예 안했을 수도 있는 반건조상태에
가까운 고기 덩어리 였다하니.

여튼 염장 고기의 경우는 먹으려면 담수에 담궈 염분을 빼내야 했죠.
이런 면에서 그나마 지상은 나았습니다.
해상에서는 염장 고기에 포함된 염분을 제거할 방법이 없었고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닷물에 담궈 그래도 약간의 염분을 제거한 다음 눈딱감고 먹는 것이었죠.
(한때 이 고기의 과다한 염분이 괴혈병의 원인이었다고 생각된 적도 있습니다.)

여튼 이런 재료로 만든 요리는 그래도 주둔지나 숙영지에서라면 수프라도 나온다든지
운좋으면 샐러드도 나올 수 있었고 품목도 좀 더 다양해질 여지가 있었죠.
한가지 참고하시면 좋은게 이 시대에는 전문 취사병이 병사들의 식사를 만든게 아니라
식사조(mess mate)가 자신들이 먹을 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이 식사조는 보통 6명 정도로 구성되는데 1개의 텐트에서 같이 자는 인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행군중이라면 저 위의 워털루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다 변변찮은
조리기구조차도 없던터라 할 수 있는 요리란게 빤했습니다. (지금의 반합같이 가벼운
식기 겸 조리용구는 19세기 넘어가야 이뤄지는 일입니다.)
불에 굽는 것이었죠.
건빵도 굽고 고기도 굽고 돌판이라도 하나 주우면 운이 좋은 것이고 때에 따라서는
기병의 흉갑이 프라이팬 목적으로 전용되기도 했다죠.

이건 중세시대의 요리 풍경을 제현한 겁니다.
2갤런 정도 들어가는 무쇠솥에 번철따위가 보이죠.

2.5갤런들이 무쇠솥. 이거 들고 행군하면 즐겁겠죠.

그런데 이런걸 행군하는 병사들이 이고지고 간다고 생각해보시길.
그러니 아예 저런 호사는 행군중에는 깔끔하게 포기하는게 좋았다는거죠.
다 나쁜건 저 모습이 적어도 19세기까지 주욱 유지됐다는 점입니다.
물론 한가지 차이라면 19세기쯤에 들어서면 저보다는 가볍고 값싸게 만든 기구들이
사용됐다는 점이죠.
중세의 조리기구 셋트들인데 이런 물건은 적어도 18세기까지
군에서 여전히 계속 사용됩니다. 아주 약간 모양만 변한 채로.

한편 건조 고기류도 시도되거나 활용이 됩니다.
개중에는 17세기 중반 프랑스군에서 보급하려던 말린 고깃가루 마르텡 보로스처럼
처절하게 실패한 - 병사들이 식사를 거부했다죠 - 경우도 있습니다.
이 건조 고기류 역시 오래전부터 유목민등에서 활용되던 방식이었고 특히 소금을
구하기 힘든 곳에서는 곧잘 사용되던 방법이었죠. (덕분에 남미 지역에서도 이런
식품류가 이전부터 활용됩니다)
고기를 최대한 얇게 저미거나 해서 햇빛이나 불로 건조시키고 여기에 적당한하
곡물가류등을 첨가할 수 있으면 첨가해서 가루나 뭉쳐서 만든 덩어리 상태로 만들어서
보관하는 것이었죠.
먹는건 역시나 물에 불리며 끓여서 먹는다였는데 그닥 환영받지는 못합니다.
의외로 곰팡이가 핀다든지 할 수도 있고 먹을 수 있게되기까지 어쩌건 손이 더 갔으니.

그외에 다른 종류의 식품류를 종군 상인들로부터 사들일 수도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저 때는 군대가 이동하면 그 뒤에는 각종 상인들부터 군인 가족,
창녀들까지 포함된 거대한 집단이 움직였죠.

이건 2008년 미군의 Natick Research에서 우리 병사에게 어제와 오늘 뭘줬나 전시회에
나온 남북전쟁 당시의 조리 풍경입니다.
그래도 이 시대는 이전보다 좀 나아진게 적어도 조리 기구가 이전보다는 비교적
가벼워졌다는 점이죠.
그러나 여전히 건빵과 염장 고기 - 돼지고기가 보통입니다 - 혹은 베이컨이 나왔죠.

이러다 한가지 매우 중요한 발명이 나오며 이제 1과 2에 영향을 미치며 슬슬 둘이
확연히 분리가 되게 됩니다.
바로 통조림의 등장과 대규모 공장에서 나오는 식품이 일상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죠.

부패를 막는 방법은 이전부터 다양한게 실행됩니다.
이중 열을 이용한 방법으로 건조가 아닌 그 때는 몰랐지만 미생물을 죽이는 방법이
18세기 들어서며 슬슬 등장합니다.

가령 오래전부터 불어로 콩피(confit)라고 부르는 요리법을 본다면 경험적인 측면에서
이미 어느정도 감은 잡았더란게 나오죠.
이 콩피는 고기를 동물성 지방에 담가 서서히 익힌 채로 식혀서 굳히는 방법으로
동물성 기름이 굳으며 몇개월까지 저장되는 방식이었죠.
그러다 안톤 반 레벤후크의 현미경 발견과 부패에 대한 실험이나 니덤의 실험처럼
가열과 밀폐를 통해 부패가 지연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러다 1800년, 프랑스 활제 나폴레옹은 1만2천 프랑의 상금이 걸린 '음식물 오래
보관하기' 현상 공모를 겁니다.
그의 군대가 이탈리아에서 승승장구했으나 보급과 식량 지급에서 개판 오분전
상황이란게 나오자 내린 공모였죠.

여기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니콜라 아페르(Nicolas Appert)입니다.
바로 오늘날 통조림의 아버지로 불리며 미국에서의 그의 이름을 따 통조림 제조를 아예
아페르법이라 부르며 기념하고 있기도 하죠. (파리의 한 구역 이름에 아페르의 이름을
기념하고 있죠. 감자를 대중화시킨 파르망띠에처럼 식품 산업계를 바꾼 사람이랄까요.)

50대의 아페르, 대머리에 두갈래의 눈섭을 가진 꽤 사나워보이는 인상이지만 쾌할하고
신용있는 사람이었다죠.

젊었을 때 맥주 양조, 하인, 여관업, 그리고 과자 제조업자이자 한 마을의 읍장
노릇까지 하던 그는 1790년대부터 이미 어떻게하면 식품을 오래 보관할 수 있을지
연구중이었죠.
그리고 1800년경 그는 큰 가마솥에서 채소(주로 콩)를 익히고 병에 담아 저장하는
공장을 차리게 됩니다.
요런 병에 음식물을 담고 잘 밀봉하고 데우면 아페르식 병조림이 완성됩니다.

그가 만든 채소가 담긴 병은 곧 오래가는 식품으로 인정받게 되며 1804년의 선상

실험도 통과한데다 1809년에는 파르망띠에가 포함된 위원회에서도 인정받고 그
이듬해에는 게이 뤼삭이 포함된 과학자들에게도 인정받게 됩니다.
1만2천프랑의 상금도 타게됐고 말입니다.

'아페르가 계절의 문제를 해결했다.
 그의 공장에서 나온 병속에는 봄, 여름, 가을이 모두 살아있다.'
--- 1`809년 2월 10일자 신문 기사중

1911년, 아페르는 그가 고안한 방법을 책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공개합니다.
독점이나 특허에 대한 권리등을 깔끔하게 포기한거죠.

'저장하고 싶은 식품을 병에 넣고 병의 입구를 조심스럽게 막을 것.
 이 마개를 막는 가정에서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그리고 밀폐된 병을 식품의 종류에 따라 정해진 시간만큼 방 마리(baine marie)에
 담긴 끓는 물로 처리한다.'
--- 아페르가 그의 고안법에 대해 설명한 대목.

아, 위의 방 마리는 큰 대접에 물을 넣고 그 속에 작은 그릇을 넣은 다음 그 전체를
오븐에 넣어 데우는 방법입니다.
이건 오늘날의 방 마리
지금도 뷔페 식당등에 가시면 보이는 스테인레스로 된 바로 이런 물건이 방 마리의
현대화 버젼입니다.

1810년, 영국의 피터 듀런드(Peter Durand)라는 영국인이 비싸고 깨지기 십상인 유리병
대신 주석 도금된 양철 깡통을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의 특허는 1813년에 죤 홀(John Hall)과 브라이언 도어킨(Bryan
Dorkin)이라는 영국인들에 의해 상용화가 됩니다.
또 이 시기, 수증기를 쓰는 방법도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페르는 고국 프랑스에서 그렇게 대접을 받지는 못합니다.
나폴레옹 이후 복귀한 왕정체계는 나폴레옹 시대에 이름을 날린 아페르에게 지원을
하길 꺼려했죠.
그나마 1822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이란 영광과 연구 장소까지 제공받긴 합니다만
그는 가진 돈을 모두 실험에 날려버리고 부인마저 떠난 채로 1841년 6월 1일, 쓸쓸한
죽음을 맞습니다.
심지어 공동 묘지에서조차도 극빈자 구역에 묻혀버리죠.

이 때까지만해도 통조림은 저렴하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식품이자 모험가나 군대에서나 필요한 정도로 인식됐고 위험하기도 했죠.
특히 문제가된 것은 바로 통조림의 덩치가 커질수록 내부에서 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점은 1850년대의 영국 해군이 경험한 일로 6파운드 이상의 크기를 가진 고기
통조림이 썩어버리는 일이 발생하며 알려지게 됩니다. (이 일로 영국해군은 구매한
통조림 수만개를 폐기합니다)
이 때만해도 그 원인이 통조림속에 남겨진 공기가 문제일 것이다라고 추측됩니다만
실상은 열처리 과정이 제대로 안되서 였답니다.
통조림이 커지면서 열이 속에까지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던 것이죠.

그리고 이건 훗날 알려지게 되지만 뚜껑을 밀폐하는 납땜이 문제가 됩니다.
당시 통조림은 뚜껑 부분을 밀폐하는데 납으로된 테이프를 대고 이걸 녹여 땜질하는
방식으로 처리됐거든요.
덕분에 통조림을 오래 먹으면 납중독에 걸릴 수도 있다라는 점이었죠.
이전 시대 통조림의 잔해, 납으로된 테가 아직 남아있죠.

이 문제는 바로 프랭클린의 잃어버린 원정(Franklin's lost expedition)의 원인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영국 해군의 유능한 함장이자 모험가였던 프랭클린 경(Captain Sir John Franklin)은
1845년 북국해로 모험을 떠나나 그 탐험대는 실패하고 맙니다.
남겨진 기록에서 그들은 기묘하고도 이상한 행동을 하며 사라져버린 것으로 남겨지죠.
후일 1980년대에 그들의 남겨진 유해에서 주변 환경보다 더많은 납이 발견되죠.
(2천년인가에 얼어붙은 시체가 발굴되어져 다시 검사됩니다. 역시 납이 검출되죠.)

한편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 통조림은 상당히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 넓은 땅 때문에 자칫하다간 염장 고기와 밀가루 또는 옥수수 가루로 만든 자니
케이크(joney cake)만 먹을 수도 있던 상황에서 통조림은 환영받을 수 밖에 없었으니.
덕분에 발전은 계속되어 1847년, 앨런 테일러(Allen Taylor)가 손으로 말아서 만들던
깡통 생산 과정을 기계화하는 특허를 냅니다.
덕분에 신대륙에서 통조림 산업은 급격히 신장되며 1856년에는 게일 보든(Gail
Borden)에 의해 연유 통조림이 생산되죠.
1860년, 토마토 통조림 공장을 운영하던 이삭 솔로몬(Isaac Solomon)에 의해 그 당시
열처리 하는데 걸리던 시간을 대폭 단축시키는 공정이 개발됩니다.
당시 통조림의 열처리 시간은 5 ~ 6시간인데 솔로몬은 그걸 1시간대로 줄여버린거죠.
이 발견은 공장 하나에서 하루에 2 ~ 3천개 만들던걸 하루에 2만개 만들어낼 정도로
통조림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켜 통조림 가격까지 낮아지게 만들죠.

그리고 남북전쟁이 터집니다.
뉴욕시 하나로 남부 연맹의 공업 생산량에 맞설 수 있다던 북부의 통조림 공장들,
호황을 누릴 기회를 잡게 되죠.
1860년에 5백만개의 통조림이 생산되더니 1865년에는 이게 3천만개가 생산될 정도였고
이미 이 때 통조림에 든 커피와 연유의 혼합물을 물에 타서 먹을 정도가 됩니다.

'망치와 끌로 주의하여 따시오.'
--- 1840년대 영국에서 생산된 12파운드 쇠고기 통조림에 붙은 라벨의 내용

한편 통조림의 발전과 함께 통조림 따개도 여러가지가 등장합니다.
망치와 끌에서 군에서는 개머리판으로 치거나 대검으로 찔러 따기도 했으며 아예
소총으로 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죠.
그러다 1855년 영국의 로버트 예이트(Robert Yates)와 미국의 이즈라 워너(Ezra J.
Warner)가 지랫대 원리를 사용한 커다란 통조림 따개를 개발합니다.
1858년에 워너의 따개가 미육군에 공식 채택되며 이 황소대가리 따개(bull’s head
opener)가 지급됩니다.
그 후로 이 따개는 여러가지가 발명되며 마침내 덩치가 작은 P-38 따개까지 등장하죠.
가장 아래가 바로 P-38
위로 갈수록 참 흉기스럽게 생겼죠.

이렇게 통조림이 나오고 저장에 대한 기술도 발달하며 군대의 식단이 풍요로워질려고
폼을 잡습니다만 그렇게 좋아진건 아닙니다.
더욱이 이 통조림이란게 항상 소모되는건 아니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분명한건 통조림이 물론 1의 주둔지 식사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주가 된건 아니었다는
점이고 2의 행군식량에 포함된다해도 항상 전투중 통조림만 까댄건 아니었다라는
점이죠.

어떤 군대가 한달 30일동안 전투를 나갔다고 쳐봅시다.
이 군대, 하루 3끼, 총 90끼를 인원수대로 먹여놔야 전투를 할 수 있을겁니다.
그런데 이런...
한달내내 90일동안 통조림으로 구성된 요상한 보존식품들, 다르게 말하자면 전투식량만
줬다 쳐보시길.
병사들이 환장안하면 이건 진짜 다행입니다.

이게 농담같으신 분은 1끼를 통조림 참치나 스팸 깡통, 치즈 1장에 인스턴트 커피 1잔,
담배 2가치, 2리터 정도의 물과 한숫가락 분량의 소금과 설탕, 바짝 마른 빵
200그램정도로만 먹으면서 얼마나 갈 수 있나 버텨보시길.
중간에 과일이나 야채 이런거 드시면 무효입니다.
물론 죽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죽고 싶어질 뿐인게 탈이죠.

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맛대가리 상실한 요상한 보존 식품만을 줬다가는 병사들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그래서 군대는 저 위의 2번째 전투 식량은 말그대로 밥해먹기 거시기한 상황에서나
주는거고 보통은 1번에 해당하는 밥을 해서 전투중에도 주려고 합니다.

이건 이른바 보온 식관이라 불리는 바로 그 물건인데 미군이고 독일군이고 영국군이고
어디고 간에 2차대전때부터 지금까지도 곧잘 써온 유서깊은 물건입니다.
저 물건은 현재 미군이 사용중인거죠.

이게 만들어진 이유는 간단하게 추측이 되실 겁니다.

짬밥 만들어서 상황이 가능하다면 전투중인 인원들에게도 따뜻한 식사를 하게 해주려는
나름대로의 배려였던거죠.
밥하려면 주방도 이동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게 바로 이런 취사 트레일러들.

물론 이와 같은 보기좋은 통은 아닙니다만 1차대전때도 겉은 나무로 만들고 속에

지푸라기를 채워 보온성을 높인 상자속에 식관을 담아 추진합니다.
혹시 서부전선 이상없다를 읽어보시면 이런 구절이 나오는게 보일 겁니다.

'식사 담당인 누구는 겁쟁이라 밥통을 저멀리 던져놓고 도망갔다.'
여기서 밥통이란게 바로 저 식관이 든 통입니다.

'식관에서는 항상 냄새가 났다.
 표백분(차아염소산칼슘)으로 씼고 세척하지만 항상 냄새가 났다.'
--- 1차대전중 회고에서.
    요기서 표백분은 쉽게 말해 수영장 소독하는 크로칼키니 뭐니 하는 그 물건입니다.
    염소계 표백제이자 물을 처리하는데 사용되죠.

이건 2차대전전의 프랑스군

역시 먹고 사는거 힘들죠.
2차대전중 독일군, 오른쪽 배나온 아저씨는 공군같은데...

1870년대 넘어서면서 이제 이런 체계가 어느정도 자리잡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체계를 비교적 신속하게 실전에서 경험해본게 영구군이었죠.
식민지 전쟁 하느라 여기저기 간다고 바빴으니 말입니다.

이 시기, 영국군은 비상식량에 가까운 것을 병사에게 지급하게 됩니다.
이른바 secure ration이란 걸로 그저 1/2파운드의 건빵과 1/2온스의 소금이 든 봉지를
왁스처리된 종이로 감싼 작은 팩이었죠.
만약 급식을 못하는 상황에서 이거라도 먹고 버텨보라는 소리인데 좋아할리 없겠죠.

한편 1880년에 보브릴사(Bovril Co.)가 만든 비상식량이 영국군에 납품됩니다.
이건 금속 또는 왁스먹인 방수 마분지통에 든 '관'(프링글스 깡통 생각하세요)
모양이었고 속에는 Bovril Paste 또는 Johnston's Fluid Beef라고 불리는 고기스프
덩어리(오늘날의 인스턴트 부용bullion)와 코코아 혹은 초컬릿 덩어리가 들어있었죠.
이 보르빌 비상식량은 보어전쟁동안 병사들에게 지급되며 영국해군에서도 1900년대까지
사용합니다.

요기까지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 통조림과 같은 식품류가 정상적인 식사라기 보다는
비상식쪽에 가까운 대접을 받은 셈입니다.

여튼 저 보르빌 레이션정도로는 모자랐던지 몇종의 식품류가 이런 비상 식량에 더
추가가 됩니다.
깡통에 든 육포나 생선 통조림, 왁스먹인 종이로 감싸인 건빵, 차, 담배등이 들어가죠.

한편 이전처럼 염장 고기니 건빵말고 정규적인 식사를 위한 통조림류의 구매도 급속히
늘어납니다.
특히 이건 주변에서 식량을 구하기 힘든 보어 전쟁당시 더욱 증가되죠.
보어전쟁 당시의 비스킷과 쇠고기 통조림

이 시기 다음과 같은 통조림들이 급히 구매되어져 병사에게 지급되거나 요리에

활용됩니다.

1. 고기 통조림: 쇠고기(corned beef)만 아니라 돼지고기나 닭, 거위나 칠면조,
    정어리나 연어등이 지급되며 간혹 간 페이스트(liber paste)같은 것도 들어갔다
    하죠.


2. 12 또는 478온스의 각종 스튜 통조림.
    내용물이야 고기에 당근이나 몇종의 야채정도가 들어간 겁니다.

3. 콩 통조림

4. 차와 연유: 차는 봉지에 연유는 보통 12온스 통조림으로 들어갔는데 둘다
    영국친구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죠.

그런데 이 보어전쟁 당시 약간의 이변이 있었던게 영국군 당국이 무슨 이유에선지
커피를 지급해본 적이 있답니다.
물론 이건 미국처럼 아예 통조림화시킨건 아니고 원두와 그걸 가는 그라인더를
지급했는데 인기가 꽤 좋았다죠.
이 커피는 그냥 마시는 것에만 사용된게 아니라 염색용으로도 사용됩니다.
맑은 아프리카의 날씨에선 영국군 군장의 하얀색 탄대라든지 표식 따위는 날 쏴주세요
라는 보기 좋은 표식이었으니 말입니다.
보어전쟁 당시의 부사관 복장, 조준하기 쉽게 생겼죠.

보어전쟁의 경험에 따라 영국군은 1903년 다음과 같은 '긴급식량(iron ration)'을

개인별로 지급하는 방안을 내놓습니다.

1. 1개의 고기 통조림
   처음에는 12온스였으나 14온스로 양을 늘립니다.
   종류는 돼지고리(pork loaf)와 콘 비프(혹은 그저 bully beef)였죠.

   아, 아시겠지만 콘 비프는 속에 콘(곡물)이 들어간게 아니라 굵은 낱알 모양의
   소금을 써서 절인 고기란 의미입니다.
   콘이라면 옥수수를 생각하시면 안되고 주로먹는 곡식류로 보시면 됩니다.
   (미국친구들이야 옥수수를 꼽겠지만 영국친구들에겐 옥수수는 그저 maize죠.)

2. 12온스의 비스킷
   2개의 6온스 팩으로 구성됩니다.
   이 시기부터 왁스가 먹여진 종이외에 셀로판(cellophane)이 사용됩니다.

3. 고기 추출물(meat extract)
   뭐 딴건 없고 1온스짜리 고기국물 건조시킨 덩어리입니다.
   그러니 부용이죠.

4. 5/8 온스의 차와 2온스의 설탕

5. 1/2온스의 소금
   소금은 간과되기 쉽지만 반드시 필요한 물질입니다.
   특히 덥고 땀을 많이 흘리는 상황에서 이 정도 소금은 조미료가 아니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가 되죠.

그외에 3온스 정도의 치즈나 1온스 정도의 건포도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이 긴급 식량은 정상적인 식량 보급이 중단될 때 먹는다라는 계획으로 지급되죠.

그런데 이게 참 뭐해진게 1차대전이 터지자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원래 계획한 야전 취사장에서 만든 식사를 추진해서 보내준다라는 것이 생각보다
안쉽게 된거죠.
전선앞보다 그 직후방에 포탄이 더 자주 날아왔다는걸 보면 임무의 위험성은
빤해질겁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나오는 멀찍히 던져놓고 도망가는게 이상한게 아니었고
오죽했으면 식관이 든 보온 상자(속에 밀짚이 든)와 그걸 실은 작은 수레를 끌고가다
죽는 - death by dixie라 부른 - 상황이 드문 일은 아니었죠.
1차대전중, 독일군의 야전 제빵소

이런 판인지라 곧잘 병사들은 참호속에서 비상식량에 손을 대야만 하는 사태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나마 충분히 가져온 경우면 맛이 뭐같아도 참을만 했지만 사태가 나쁘면 이마저도
못먹고 후방에서 식사를 던져줄 때까지 견뎌야 할 상황도 생겼죠. (보통 3일치가
휴대됩니다.)
그럼에도 영국군이나 독일군이나 어디건 야전 취사해서 밥을 준다는 것은 전쟁말까지
꾸준히 지키긴 합니다.

여튼 1차대전중 비교적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다음과 같은 재료로 만든 3끼 식사가
제공됩니다.

1. 1파운드의 고기
   항상 고기보다 비계가 많다라고 불평을 산 물건이고 그나마 고기가 아니라 통조림
   고기 - bully beef - 로 대채될 때도 많았다고 하죠.
   여기에 4온스 정도의 베이컨이 지급되기도 하는데 이건 다른 고기나 고기
   통조림으로 대채되기도 하며 기름을 사용할 목적이었다면 버터나 라드등으로도
   대신됩니다.

2. 1과 1/4 파운드의 빵
   규정상 만든지 얼마안된 신선한 빵이라 했지만 보통은 적어도 만든지 1주 넘은
   물건이었죠.
   게다가 운나쁘면 예의 그 유서깊은 비스킷을 먹어야 했답니다.
   간혹 4온스 정도의 쌀이나 오트밀이 지급됐다고도 하죠.
   쌀의 경우는 흔히 뻥튀기처럼 볶아진 상태로 포리지(죽)에 들어갔다고도 하죠.

3. 8온스 정도의 야채
   생야채가 기본이고 2온스의 건조 야채가 추가됩니다.
   종류는 당근이나 양쪽 모든 병사들이 끔찍히도 싫어한 순무였다죠.

4. 3온스의 치즈 통조림
   호주나 뉴질랜드 산이었다죠.
   맛이 이전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질긴 가죽 같았다라는 평입니다.

5. 5/8온스의 차에 3온스 정도의 설탕
   병사들을 환장하게 만든 일중 하나는 도중에 일부에서는 이 차와 설탕이 서로
   혼합된 형태로 지급됐다라는 겁니다.
   물론 그냥 물만 부으면 한잔의 차가 나오는데 맛없는 밥, 좀 맛있게 먹으려고 설탕
   좀 치려면 차잎 때문에 환장하는거죠.

6. 소금은 여전히 1/2온스입니다.

7. 4온스의 잼
   이건 13.2온스의 통조림에 담겨져 나오는걸 3명이서 나누게 됩니다.
   꽤많은 양이 지급된 셈인데 병사들은 오직 유일한 상표, 티클러스 자두와 사과
   잼(Ticklers Plum and Apple)에 곧 질려버리죠.
   1917년말경에 딸기나 다른 맛이 추가되자 이걸 보고 병사들이 혁명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일상적이었다나요.
   한가지, 이 잼이 든 깡통은 철조망에 철사와 함께 달려져 경고용 종처럼 사용되기도
   했고 그보다 좀 더 위험한 목적으로도 사용됩니다.
   바로 잼 깡통에 포병대의 장약 자루에서 나온 무연화약을 채우고 심지를 붙인
   jam-tin bombs가 그것이죠.
   밀즈 수류탄같이 괜찮은 성능의 수류탄이 나오기전 곧잘 사용된 물건입니다.
  (1차대전초 영국군의 헤일즈 수류탄같은건 거의 안습 상황이라서요.)

그외에 지역 상황에 따라서는 주변의 에스타미네나 가족이 보내준 소포가 식사를
꾸리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한편 후일 M&V (Meat & Vegetable, 야채와 고기 스튜)로 통칭될 통조림들이 개인
사비로 구입되기도 합니다.
보통 20 ~ 24온스의 통조림에 든 물건들인데 이중 제일 유명했던게 바로 매커너키
형제(Maconochie Brothers)의 스튜였죠.
이들은 곧잘 고기에 순무, 양파와 양배추, 감자, 당근등을 넣고 끓인 스튜였는데
개중에는 저급한 고기를 써서 지방분이 더많은 것도 있었다 하죠.
어쩌건 이 통조림들은 그나마 따뜻할 때는 괜찮았지만 차가운건 이른바 사람잡는 - man
killing - 것이라 불렸죠.

그런데 이런 물건들이 위에서도 말했지만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지급될지 몰라도
전선으로 가는 도중 곧잘 망실되거나 - 누가 먹은게 아니라 무거워서 버린 경우가 많을
정도라죠 - 해서 제대로 지급 안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게다가 전쟁이 격화되면서 선적되는 물자가 증가되자 덜먹고 덜싸자 라는 직설적인

요구가 나올 정도가 되는데다 잠수함까지 설치면 더 괴로워지죠.
이런 여파 때문인지 1916년과 1917년에는 고기의 양이 약간 줄고 대신에 강남콩
통조림이 그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지급되기도 합니다.
이건 종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돼지고기로 맛을 더했고 마치 오늘날의 baked
beans의 조상쯤 된다고 하죠.
곧잘 빵이나 건빵위에 토핑처럼 올려져서 먹었다 하죠.

그외에 담배라든지 초컬릿같은 것이 지급되기도 하며 크리스마스와 같은 특별한 경우
민간의 선물이 보내지기도 합니다.
이미 이 때 백화점들은 우편을 통한 통신판매를 하고 있었고 직접 혹은 가족에게 부탁
해서 뭔가 받아볼 수 있었죠.
보통은 담배와 초컬릿, 위스키등이었는데 이런 선물중 유명한건 1914년의 Princess
Mary Christmas Gift 일겁니다.
여기에는 카드와 총알 모양의 연필, 편지지, 초컬릿과 담배가 들어있었다 하죠.

이런 영국군의 방식은 그 당시 다른 군대에서도 거의 비슷하게 사용됩니다.
단, 나라에 따라 좋아하는 것이 좀 달라지는게 차이였죠.
가령 독일군은 돼지고기와 라드를 선호했고 잼대신에 인조벌꿀을 지급했죠.
프랑스군의 경우는 닭과 같은 고기를 좀 더 좋아했다나요.
재미있는건 프랑스군의 겨우 통조림에 대해 다른 곳보다 좀 더 거부감이 심했다고
합니다.
영양가가 못하다라고 믿었다나요. (지금도 이건 여전하다곤 합니다.)

그리고 식량 부족 현상은 다른 곳도 겪었던 일이었고 특히 독일군은 이른바
1916년초부터 조짐이 보이더니 결국 1916 ~ 1917년의 이른바 '순무의 겨울'을
경험하죠.
빵조차도 톱밥에 순무 가루가 들어가더니 거기 발라먹을 것도 으깬 순무였고 스튜는
쐐기풀과 순무로 만들어 졌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연합군의 경우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참전하며 이젠 이야기가 달라져 버립니다.
총잘쏘고 명령에 잘 복종하는데다 뻔뻔스러울 정도로 애국심이 강한 병사와 허풍잘치고
형편없지만 열정적인 장교들외에 아주 많은 미국의 밀과 육류가 전선으로 쏟아져
들어갑니다.
이미 세계 경제의 축을 쥐고있던 미국으로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었겠죠. (미국
참전전 독일도 벨기에를 통해 미국산 밀을 빼냄으로 한숨 돌릴 정도였죠.)
그런 나라의 성질을 제대로 건드린 침머만은 확실히 미친게 맞겠죠.
이게 그 침머만 전보.
봉쇄당한 독일을 위해 웨스턴 유니언의 전선을 열어주며 호의를 보였더니
영국에서도 저걸 풀어보고 깜짝 놀랐더라는...
멕시코와 일본을 꼬셔 미국을 공격, 미국이 전쟁에 참전 못하게 막아주면
멕시코가 잃었던 땅을 주겠다는 내용이었으니.

어이, 멕시코 친구들,
우리 편에 붙어서 미국을 함 치자고.


여튼 굴다리밑으로 올 필요도 읎따 기둘려라 개쉑들 하고 참전한 미군도
영국군과 비슷한 식의 전투 식량을 지급하지만 그 양이 더 많았었죠.

좀 다른 점이라면 이들은 감자를 식단에 넣었다는 점이고 차고 넘칠만큼의 콘 비프
통조림과 많은 양의 커피도 가져옵니다.

이 시기, 미군의 전투 식량은 크게 예비(reserve), 참호(trench), 비상(emergency)으로
구분됩니다.
이들은 모두 정상적인 식사가 불가능할 때를 대비해 휴대됐고 내용이 약간씩 다릅니다.

trench ration은 25명분의 하루 3끼가 하나에 들어있습니다.
2개 분대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이었고 고체 알코올 연료까지 포함한데다 가스전에
대비, 아연 도금까지 한 통속에 들어갑니다.
문제는 너무 크고 너무 무거웠다는 점이죠.
참호에서도 각종 통조림류를 따뜻하게 데워서 먹는다는 생각은 좋았지만 들고 다니는
입장에서는 싫은 물건인거죠.

reserve ration의 경우 1일치가 1파운드의 콘 비프, 2개의 8온스 건빵 통조림, 1온스의
커피 가루와 2.4온스의 설탕, 0.16온스의 소금으로 구성되죠.
보통 이건 미군만 아니라 연합군 부대에도 꽤 뿌려집니다.
덕분에 저 1파운드 콘 비프 통조림은 전선에서 꽤 유명세를 타게 되죠.
독일군조차도 찾을 정도였으니.

emergency ration은 그저 iron이나 armor ration이란 별칭으로도 불립니다.
보통 다른 군대의 것과 달리 둥근 깡통에 3온스의 고기 분말과 마치 시리얼처럼 요리한
밀을 혼합한 덩어리와 1온스의 초컬릿 바로 이뤄집니다.

어쩌건 1차대전이 끝나면서 각국은 자신들이 가진 전투식량을 좀 더 개선합니다.
전투지역에서 바로 먹을 수 있고 이동시키기 쉬운 간편함, 영양의 배분, 사기를 위한
맛과 양이 지켜져야 한다는 교훈이 다시 항상 강조됐으니.

여기서 전투식량은 지급할 병력들의 범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다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부대 급양(unit feeding)
정상적인 식재료로 준비된 취사장 설비를 사용하여 부대 규모의 병력에 정규적인
경로를 통해 급식.

소부대 급양(small detachment feeding)
독립된 적은 수의 병력들에게 소규모 취사설비를 사용하거나 혹은 간략화된 취사과정을
거쳐 급식.
예: 1개 분대를 위한 10-in-1이나 취사 트레일러로 만든 급식.

개인 급양(individual feeding)
개인 휴대식으로 취사과정은 데우는 정도로 한정되며 아예 그냥 먹을 수 있는 경우도
흔합니다.

위의 분류를 좀 더 보충하며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도 있죠,

대량 지급을 위한 신선한 식재료들.
흔히 알려진 미군식 구분에 따르면 Field Ration A라 불리는 것들.
신선한 육류, 어류, 야채와 과일, 낙농품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본토에서 가져온 것외에
인근 지역에서 얻어지는 재료들도 포함됩니다.
보통 정상적인 상황에서라면 이런 재료들은 그 지역에서 할당된 자금으로 대량
구매되죠.
또 흔히 부대 급양을 상정하여 100인분 단위로 계획됩니다.

대량 지급을 위한 저장가능한 식재료.
미군식 구분으로는 Field Ration B.
각종 통조림이나 2차대전이후 본격화된 냉동식품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소부대용 전투식량
보통 1일 10명 내외의 인원을 기준으로 합니다.
전차병등을 위한 5인용 1일분이나 분대원들을 위한 10인용 1일분 식사등이 포함되며
취사 트레일러등에서 만든 것도 여기에 포함되죠.
휴대가능하고 장기 저장이 가능한 형태와 대량 지급식과 다를 바 없는 막 만든 것이
모두 포함된다는 겁니다.
화장실 휴지나 정수제같은 부가적인 품목(accessory items)이 포함되기도 하죠.

개인 휴대형 전투식량
조리과정없이 먹을 수 있어야 하며 적어도 최소한의 조리과정만을 거쳐 먹을 수 있는.

축소된 형태의 개인휴대 전투식량(assault)
개인 휴대형 전투식량에 비해 가장 기본적인 품목만으로 최소화시키고 더욱 작고
가볍게 만들어진 겁니다.

비상식(emergency)
고립과 같이 정상적인 급식이 어려운 상황에 대비해 전투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으며 몇 개를 쉽게 휴대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어지죠.

생존식(survival)
어떤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최소한의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장기 저장이 가능하며 비상식보다 더 적은 부피와 무게가 요구되죠.

첨가 품목들(supplements)
여기에는 각종 음료나 분말음료, 차, 감미품과 같은 보조적인 식품(supplementary
food)과 기호품들, 조미료들, 비누나 면도기, 화장지같은 잡화(sundries)들도
포함됩니다.

툭수한 경우(special)
가령 극한지 전용 식단처럼 고칼로리 식단도 존재하며 항공기나 기차등으로 이동시
지급하는 도시락이나 특식류등이 여기에 속하죠.

1920년대말 미육군은 전투식량에 4가지 구분을 하게 되죠.
1. Garrison Ration
   주둔지 급식으로 대부분 신선한 재료를 바탕으로 만들어 지죠.

2. Travel Ration
   장거리 이동을 할 경우 지급되며 저장성이 좋은 식품들로 구성.
   통조림과 냉동식품들.

3. Reserve Ration
   저장-비축용 식량으로 의외로 들릴지 모르지만 개인휴대용 비상식량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4. Field Ration
   야전상황의 전투식량들로 Reserve Ration과 Field Ration이 통합되는 분위기로
   가게되죠.
   가령 비상식량의 성격이 강했던 D ration은 개발 초만해도 Reserve Ration에
   속하지만 곧 Field Ration으로 구분됩니다.

1937년, 식품연구소의 W.R. McReynolds소령이 표준화된 다양한 메뉴, 개인지급을
기준으로한 새로운 거의 통조림화된 전투식량을 개발합니다.
그는 새로운 전투식량은 일상적인 식사를 기준으로 모두 통조림화하는 것을 생각했다
하죠.

1938년, 이 새로운 전투식량이 완성되어 combat ration이란 별칭으로 시험되고
영양학적인 보강을 거칩니다.
최초의 것들은 3개의 고기 요리와 3개의 빵종류를 12온스 직육면체 깡통(작은
스팸깡통을 생각하시길)속에 넣은 것이었으나 곧 메뉴가 더욱 보강되며 16온스 육면체
깡통도 내부용적이 더 증가됐으며 보관과 운송, 제조등이 더 쉬운 원통형 깡통으로
교체됩니다.
그 후 계속된 실험과 평가를 거쳐 1939년 11월 1일, 미군의 야전용 전투식량으로
채용되죠.

1940년에 들어서며 16온스 깡통은 너무 크고 무거우며 내용물이 그리 충실하지 않다는
평이 나와 12온스 원통형 깡통에 되도록 많은 양의 음식을 넣고 초컬릿과 커피같은
부가적인 품목들이 더욱 보강됩니다.
이렇게 등장한 U.S. Army Field Ration C는 야전 취사설비가 전혀 필요없이도 먹을만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다는 호평속에 Ration, Type C, Assembly, Packaging and
Packing로 개칭되어 실전에 투입됩니다.
바로 C 레이션의 등장이죠.

C 레이션의 구성은 1일분 6개의 주식 통조림이 기본입니다.
3개의 B unit.
3개의 M unit.
1개의 악세서리 팩(accessory packet).

M unit은 고기 요리로 깡통 3개로 구성됩니다.

B unit은 빵이나 시리얼종류로 비스킷, 압축 시리얼이 기본이고 사탕입힌 땅콩이나
건포도, 사탕, 잼, 인스턴트 커피, 설탕, 레몬이나 오렌지 분말 쥬스, 코코아 분말,
캐라멜등이 들어갔다 하죠.
전쟁 후반기에는 보관성이 좋지 못한 땅콩과 건포도, 사탕이 사라지며 대신 퍼지
브라우니나 쿠키종류가 들어갑니다.
이 때쯤되면 사탕이나 땅콩같은 것은 그냥 PX에서 별도로 구매해서 휴대하는 경향이
커졌다 하죠.
C 레이션의 식단중 하나.
안딴 통조림은 고기와 콩 요리고 딴게 바로 B 유닛.
비스킷과 설탕, 퍼지가 들어있죠.


악세서리 팩은 담배(주로 민간회사의 것), 할로존 정수제(halazone water purification
tablet), 종이 성냥, 화장지, 츄잉검, 깡통따개, 나무 숫가락이 들어갑니다.
전쟁말에는 소금정제도 포함되죠.
담배와 성냥의 경우 그저 short 혹은 cigarette pack이라 불렸고 9개피의 담배가
통채로 포장되거나 혹은 3개피씩 3개의 포장으로 들어갑니다.

한편 1932년까지 미군은 '한통에 영양을 모두 담은 밥(a balanced meal in a can)'을
모토로 하는 휴대가 대단히 쉬운 저장 식량을 연구합니다.
뭐 이게 쉽게 될리는 없겠습니다만 다른 길이 열리게 되죠.
1933 ~ 1937년동안 Paul P. Logan 대령은 기병대를 위해 개발한 비상식량이 눈에
띈겁니다.
처음에는 야채와 고기류가 혼합된 스튜를 통조림화한다는 것이었으나 단단하고
보관성이 좋은 초컬릿 바로 결정됩니다.
곧 이 요청은 초컬릿의 제오아 허쉬사에 요청됐고 허쉬는 12온스짜리 초컬릿 바를
만들게 되죠.
그러다 1935년에 개량을 거치며 은박지와 방수포장됐으며 4온스 짜리 초컬릿 바 3개로
구성되게 됩니다.
이건 그저 Logan bar라 불렸고 초컬릿 바 하나에 600칼로리와 무기물, 비타민을
공급합니다.

1940년 6월부터 표준화된 성분(초컬릿, 귀리 분말, 카카오 지방, 설탕, 탈지분유를
혼합)으로 대량생산에 돌입하게 되며 전쟁중 연간 천만 개 이상이 생산됩니다.
전쟁중 병사들은 이 D ration의 초컬릿 바를 그저 D bar라 부르며 보통
3개(3일분)가량을 휴대했다 하죠.
맛은...
끔찍할 정도였다곤 합니다.
원래 허쉬사에서 만들 때는 그렇게까지 형편없지는 않았지만 너무 맛있으면 밥안먹고
이것만 먹는다고 맛을 없게 해달라고 했다죠.
딱 감자 으깬 것 수준으로.
결국 허쉬는 맛을 없게 하는데 성공하면서 겸사겸사 녹는점도 더 올리게 됩니다.
병사들은 마지못해 먹었고 그래도 저기 태평양 전선에서는 나름 인기를 끈 곳도 있긴
했답니다.
변질이 덜되는데다 어쩌건 삼킬 수 있는 부상자용 식량으로 말입니다.

한편 공수부대원, 기갑부대원, 오토바이부대원등을 위해 C ration보다 더욱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전투식량이 개발됩니다.
미네소타 대학의 생리-건강학 연구소의 Ancel Keys박사가 개발하며 그의 머릿글자를
따서 K ration이라 부르게 되죠.
동시기 비슷한 크기의 전투식량으로선 칼로리와 영양의 균형이 잘 맞춰진 편입니다.

K ration은 개발이후 공수부대원들의 주머니속에 들어갈만한 전투식량(pocket ration
for paratrooper)으로 테스트됩니다.
개발 당시에는 페미컨 비스킷(pemmican biscuit)과 건포도, 땅콩 초컬릿 바, 건조
스프(bouillon paste), 분말 음료, 커피등등이 들어간 것으로 비상식량에 가까웠다
하죠.
(패미컨은 쇠고기와 지방분, 곡물등이 포함된 압축 건조 식품이오.)
그러다 C ration처럼 좀더 제대로된 통조림 식품들이 들어가고 하루 3끼분으로
구분됩니다.

이렇게 개량된 것은 그 휴대성과 효율성에서 미육군의 관심을 끌게 되고 결국 1942년
Field Ration, Type K 로 전 병과에 지급되게 됐다 하죠. (심지어 소형 함정을 타는
해군에게도 지급됩니다.)
그리고 대전내내 가장 널리 사용됩니다.

K 레이션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보통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하죠.
아침식사 팩(breakfast packet)은 고기 통조림, 압축 시리얼 바, 인스턴트 커피,
플룻바, 츄잉검, 설탕, 4개피의 담배, 정수제, 화장지와 나무 숫가락.
포장 색깔은 빨간색으로 구분됩니다.
점식식사 팩(dinner packet)은 치즈 통조림, 비스킷, 사탕, 츄잉검, 분말음료,소금,
4개피의 담배, 나무 숫가락이 들어가며.
포장 색깔은 파란색으로 구분됩니다.
저녁식사 팩(supper packet)은 고기 통조림, 비스킷, 건조 스프, 과자나 츄잉검,
커피와 설탕, 4개피의 담배, 나무 스푼이 들어갔죠.
포장 색깔은 녹색으로 구분됩니다.

이와 함께 소부대 급식용 전투 식량도 개발됩니다.
하나는 1942년에 등장한 5 in 1 ration으로 사막지역의 기동부대들을 위해 개발됩니다.
보통 장갑차량에 탑승하는 사람들이 5명가량이었다는걸 보면 이 물건의 용도가 대략
감이 잡힐 겁니다.
소규모 부대원들이 조리를 안하거나 약간의 조리과정을 거쳐 급식 가능하게 계획되며
말그대로 1일 5인분의 식사가 들어갔죠.
상당부분 통조림화된 B ration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육류와 야채 요리, 분유, 음료,
건조스프, 시리얼, 비스킷, 사탕, 소금, 설탕, 화장지등이 들어갑니다.
보통 저들 메뉴는 뭉치로 들어가며 뜯어서 분배하는 스타일이었죠.

그러다 1943년, 더 큰 10 in 1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건 소부대 급양을 기준으로 B ration과 유사하게 구성될 것을 목표로 1941년초부터
개발이 시작되며 북아프리카에서 영국군 전투식량인 14 in 1 (Comp ration)의 성공에
따라 기존의 5 in 1을 대채하는 식으로 다시 개량되어 1943년부터 사용됩니다.
50파운드가량의 무게를 가지며 충분한 영양학적 배려와 취사가능성을 어느정도
살려뒀다 하죠.
튼튼한 나무상자속에 철저하게 방수처리된 포장을 도입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잘
견뎌줬다 하죠.
덕분에 사막, 산악, 열대, 극한지등에서도 사용됐고 이런 목적을 위해 개발된 특별한
전투식량들을 대체해버리기까지 했다죠.

병사들에게 호평받은 부분은 메뉴가 좀 더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합니다.
C ration등에 사용된 품목외에 각종 과일 통조림(파인애플이나 프루츠 칵테일등)이나
과자류, 다른 통조림들, 담배들은 전투식량에 질린 병사들의 입맛을 끌기에 충분했다고
하니.

한편 Assault Lunch라고 전투직전의 부대에 지급되는 도시락 개념의 물건도
존재합니다.
태평양에서 주로 사용되며 상륙작전이나 전투지역으로의 이동 중에 흔히 지급됐고
사탕, 초컬릿, 땅콩, 건조 과일, 츄잉검, 커피, 담배, 설탕, 소금, 정수제, 성냥등이
방수 주머니 속에 들어갑니다.

한편 당시 공군이 아니라 미육군 항공대를 위한 전투 식량도 개발됩니다.
이런 물건들은 흔히 조종사들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나중에는 Food Pocket,
AAF라고도 불렸다 하죠.
전투기 조종사 혹은 조리시설이 없는 전투용 항공기(폭격기 같은)의 경우 흔히
샌드위치, 사탕, 음료, 초컬릿등이 들어간 봉지를 받았다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낙하산 탈출시 비상식이 있는데 이건 탑승자들이 휴대하는 작은
비상식량 꾸러미입니다.
패미컨과 초컬릿으로 구성됐는데 맛은 뭐 그냥 그렇다죠.

한가지 미군 식량중 별난게 Red Cross Food Package입니다.
추축군에게 잡힌 포로(POW, Prisoner Of War)들을 위해 포로수용소로 보내진 것입니다.
고기 통조림, 초컬릿, 분유, 담배, 커피등이 주종이며 독일의 경우 이를 잘 전달했던
편이라죠. (일본은 거부)
물품중 담배는 포로수용소내에서 교환단위로 화폐 역활을 하기도 했으며 재미있는 것은
흔히 고기 통조림에는 스팸이 포함됐고 나중에 석방된 사람들은 스팸이라면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질려버렸다고 하죠.


독일군의 경우 아예 통조림으로 밀어버린 미군과는 좀 더 이전 모습을 간직합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사단은 기본적으로 1인당 10일분의 식량을 저장하고 가지고 다녔죠.
이중 절반 이상은 군에서 지급된 것이며 나머지 분량은 주변 지역에서 재료 상태로
구입(혹은 다른 방법을 동원)된 것이었죠.

이걸로 밥을 해주는데 밥의 양이 어느 때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침은 적게 먹고 점심 많이 먹고 저녁은 아침보다는 많지만 점심보다는 적은 양이
지급됩니다. (이게 저 동네 식습관이라서요.)
가령 많은 경우 독일군 부대는 아침에 빵 2조각에 커피에 잼이나 버터를 발라 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식사량과 관련되어져 - 칼로리 - 그 양이 어떤 임무냐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눠져서 달라집니다.

전투부대를 위한 Verpflegungssatz I의 경우 양도 많고 칼로리도 3천이상을 넘어서죠.
(동부 전선의 경우는 칼로리가 더 높습니다.)
II는 전선 부근의 점령지내 혹은 대기 부대에 지급되며 III은 안전한 지역에 주둔한
부대에 지급됩니다.
IV 의 경우는 사무 업무보거나 병원 환자 정도에게 주던 수준이었다죠.

여튼 이들 4등급의 경우는 딴 것보다 빵과 고기의 양에서 크게 차이가 납니다. (더하여
담배도)
빵의 경우 IV가 600g정도인데 반해 나머지는 700g에 I정도면 상황에 따라 900g의 빵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고기는 I이 120g이상인데 비해 IV는 60g정도였죠.
담배도 I의 경우는 하루 7가치가 나오지만 IV는 2가치 정도였죠.

사용되는 재료야 빤하다면 빤하다고 빵, 고기나 생선, 치즈나 버터같은 유제품들,
야채에 소금, 설탕, 겨자, 식초, 후추가 기본인 조미료들과 커피나 담배, 술과 같은
기호품류로 구성됩니다.
요리는 흔히 빵과 빵에 바를 버터나 마말레이드에 한그릇의 고기와 야채 요리 - 흔히
스튜같은 - 에 커피와 운좋으면 달걀등으로 만든 부수적인 요리에 과일등으로
구성됩니다.


Marschverplegung은 영어로 하자면 marching ration정도의 의미를 가집니다.
이건 작전을 위해 투입된 경우에 지급되며 1일 기준으로 다음과 같았죠.

700 ~ 750g의 빵.
200 ~ 300g의 고기 혹은 생선류, 160g정도의 소시지나 치즈.
100 ~ 180g의 야채 혹은 50g가량의 건조 야채나 피클류.
15g의 잼이나 마가린, 버터, 벌꿀등등의 스프레드 종류.
5g의 커피.
5g의 설탕.
5g의 소금.
6개피가량의 담배.
100 ~ 200g가량의 감자와 콩 50g가량이 지급되기도 하오.

빵은 관급빵(Kommissbrot, 일본식으로 해석해봤죠)으로 불리며 가장 흔했던게
Graubrot(회색빵)이라 불린 호밀빵이죠. (독일인들은 호밀빵을 선호합니다. 단, 이건
선전에 의한 과장된 경향이 있는 이야기지 항상 그런건 아닙니다.)
그 외 Weissbrot(흰빵)이라 불린 밀빵이 지급되기도 하며 이들 빵들은 한덩어리가 700
~ 750g정도입니다.
생긴건 그냥 직육면체로 중량비로 70%의 호밀, 밀가루와 같은 곡물가루와 소금, 설탕,
효모, 물이 사용되며 사단의 제빵중대(Backereikompanie)가 구워내며 기름종이나
주석박으로 포장되어 병사들에게 지급됩니다.
독일군의 제빵용 장비를 살피는 미군 병사
우리도 빵굽는 차정도는 있지. - 미군의 예

어쩌면 이 관급빵은 대전기간내내 가장 원성을 들었던 물건일 겁니다.
이거야 지금까지도 많은 군대에서 자신들의 빵에 대해서는 서슴치 않고 쓰레기 정도로
치부하긴 하니 놀랄 일도 아니지만.
군용빵 자체가 맛이 없고 딱딱한데다 재료 부족에 이르면 감자(넣으면 빵이
눅눅해지죠)나 주변에서 구한 곡물가루가 들어가니 평소에 호밀이나 밀빵에 익숙한
병사들에겐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었죠.

간혹 지휘관 재량에 따라 빵의 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좋은 예로 만약 야채와 감자, 콩종류를 지급받지 못한다면 대신 빵의 양이 100g이상
증가됐다 하니.

또 특수상황에서 빵은 건빵(츠비박 Zwieback, Hartbrot, Hartzwieback)종류로 대채될
수 있습니다.
어쩌건 건조된 상태니 오래가고 보통 빵으로 버티기 힘든 경우라면 이런걸 먹어야
할테니.

육류의 경우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돼지고기입니다.
신선한 고기도 사용되지만 오래 저장이 가능한 건조 소시지가 더 자주 지급됐다죠.
육류는 사단내의 도살대(Schlachtereizug, 보통 소대급)에서 가축을 받아 도살하고
처리하여 지급합니다.
18세기 이후 유럽의 연대급 부대는 경리부서를 통해 할당된 예산 내에서 육류를 사들일
수 있었고 독일군도 마찬가지였죠.

뭐 그외에 주변에서 위치이동한 동물들이 식사 재료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제일 선호되는건 아무래도 잡기도 좋고 이동도 쉬운 닭이나 거위같은
가금류겠죠.

치즈는 육류를 대신하여 지급될 때가 있었으며 큰 덩어리를 가져와 잘라서 지급했다
하죠.
흔히 생각하며 먹는 부드러운 것이 아니라 상당히 딱딱하고 짠 것이었다고 하며
가죽같다 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운이좋아 달걀이 나오면 2 ~ 3개로 육류와 치즈를 대채해버립니다.
그러나 달걀은 그 저장성과 보관성때문에 어딜가건 선호되진 못하죠.
이거야 급식상황이 좋은 기지에서도 곧잘 분말달걀을 먹었던 미군이 좋은 예일 겁니다.

버터나 마가린과 같은 지방류는 큰 통에 담겨져온걸 분배합니다.
야전에서 병사들은 받은 것을 잡낭에 넣는 베이클라이트제 버터통( Fettesbusche)에
담아뒀죠.
아프리카에서는 열대에서의 변질을 막기위해 올리브유가 든 것이 지급되기도 했다하죠.
독일군의 관급품 몇가지.
면도기, 면도크림 바르는 솔, 칫솔과 치약, 비누, 에스빗(고체 알코올)외에
아랫면 중간에 빨간통이 바로 버터등을 담아두는 통.


커피나 차(코코아같은 다른 차류)는 200ml정도 분량을 끓일 정도의 양을 지급받습니다.
커피의 경우는 전쟁중 대용 커피(Ersatz Kaffe)로 변합니다.
그전에는 커피 원두 분말이 봉지에 들어 있었고 물에 넣어서 끓여먹었는데 전쟁이
격화되며 커피를 암시장에서조차도 구할 수 없게되자 대용 커피가 등장한거죠.
대용 커피는 치커리와 다른 곡물을 볶아 가루낸 것이고 20g들이 봉지가 지급되면
4명이서 나눕니다.
혹은 1봉지 받아서 1일 혹은 2일간 먹는거죠.
커피는 흔히 설탕, 부가적인 탈지분유와 같이 먹었다 하죠.

야전에서도 병사들은 가능하다면 빵, 반합에 야채와 육류, 두류 등을 혼합해 요리한
따뜻한 죽 혹은 수프나 스튜(Eintopf라고 불린)종류를 먹었고 커피를 마십니다.
가능하다면 소대인원은 2개가량의 등에 질 수 있는 큰 보온 식관으로 2명의 병사가
추진한 식사를 받아먹을 수도 있었고.

담배는 히틀러가 별로 안좋아했던지 어떤지 모르지만 독일군 병사들은 담배에 굶주린
편입니다.
이미 전쟁전 히틀러는 홉연, 특히 여성 홉연에 대해 극도로 혐오감을 표현하죠.
담배도 다양한 회사에서 나온게 아니라 제국 연초회사(라고 해야 하려나)에서 나온
것만 유통됐죠.
그나마 국방군 병사들은 담배에 대해서는 나은 편입니다.
SS의 경우는 지휘관들이 담배피우는걸 기피한 경향이 많아서 하루 담배지급량이 뚝
떨어져버리는 상황도 발생했다하니.

군용 지급 담배는 흔히 4개피가 슬라이드 팩이나 종이봉투에 들어갑니다.
독일군이 지급받은 담배는 필터가 없는 것이며 간혹 엽궐련이나 파이프 담배(담배잎을
가늘고 길게 썬)도 지급되어 직접 종이로 담배를 말아서 피우기도 했다죠.
이건 파이프용 담배, 물론 그냥 종이에 말아서 피우기도 했죠.

비홉연자나 담배를 지급받지 못할 경우 담배대신 별도의 지급품이나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 비홉연자들중에는 그냥 담배를 받고 그걸로 장사를
하는 수완가들도 있었다죠.
담배 급한건 골초들이지 비홉연자는 아니었으므로 교환가치가 꽤 있었다나요.

여담이지만 대전말, 독일군내에선 필터가 달린 카멜이나 럭키 스트라이크같은 미제
담배가 인기를 끕니다.
벌지전투 당시 미국제 담배를 문 한 독일 병사.
혹자는 오른쪽의 담배갑이 카멜같다나...
이게 전리품외에 교환 수단으로도 사용됐으니. (전쟁이 끝나고 이들 미제 담배는 패전
독일의 화폐대용품으로 사용된 적도 있을 정도입니다.)
내가 한때 럭키 스트라이크와 함께 짱막던 때가 있었지.
1943년 카멜의 광고 포스터


술의 경우 화주(브랜디나 슈납스, 보드카같은)종류는 0.5리터 이하로 와인종류는
그보다 좀 더 많은 양이 지급됩니다.
크리스마스나 새해와 같은 명절때 지급되며 대전투를 앞두고 분배되어 불길한 징조로
여겨지기도 하죠.
병사들에게 계획에 없던 술의 지급(미군식으로 하자면 spirit ration)은 이전부터
전의고취와 공포감을 잊게하는 수단으로 곧잘 사용됐고 그래서 경험 많은 병사들이라면
갑작스런 술의 지급을 결코 반기지는 않았다고 하니.
그외 상황에서 술은 전투가 아예없고 통제가 거의 완벽하게 가능한 상황에서
지급되지만 병사들이 이걸 잘 따라줬다고는 못할 겁니다.

물론 이 술과 얽힌 사고 역시 독일군도 겪는 문제였죠.
술에 취해서 불복종은 기본이고 메탄올 따위를 마신다거나 특히 루프트바페등에서는
알코올을 지킨다고 머리 좀 아팠다하니. (알코올은 세척용으로도 사용됩니다.)

그외 특별한 것으로 100g가량의 무화과같은 건조 과일이나 쿠키같은 과자류, 사탕,
초컬릿, 과일등등이 특식(Sonderverpflegung)으로 지급되기도 하죠.

장거리 이동을 할 때도 특식은 지급됩니다.
가령 휴가를 받아 동부전선에서 독일로 기차 이동하는 병사들에게도 이런 특식들을
받을 수 있었고 반대로 동부전선으로 가는 병사들도 받을 수 있었죠.
전자의 경우는 매우 즐겁고 또 가족에게 주기위해 남겨간 병사도 있겠지만 후자는
목으로 넘어갔을지 모르겠습니다.


Eiserne Portion은 전투식량이면서도 비상식량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병사들은 지휘관의 명령없이는 이것을 손댈 수 없었죠.
이 점은 영국군이나 미군의 24 Hour ration이나 K ration같은 개인용 휴대식들과는 좀
다른 모습입니다.
장거리 정찰, 먼거리의 외각 근무, 공격등과 같이 2일이상 정상적 급식이 어려운
상황일때 지급됩니다.
내용물은 다음과 같죠.

200 ~ 250g의 통조림 혹은 포장된 건빵이나 비스킷.
200 ~ 300g의 육류 혹은 생선 통조림이나 160g의 간소세지(Leberwurst)페이스트.
10g의 커피.

건빵(츠비박 Zwieback, Hartbrot, Hartzwieback)은 대항해 시대에 먹던 선원용
비스킷(영국식으로 하자면 hardtack)과 같은 것으로 정말 전통적인 겁니다.
곡물가루, 물, 소금을 반죽하여 약간의 유지류를 칠한 다음 오븐에서 한번 굽고 살짝
말린 뒤, 뒤집어서 다시 구워 만든 것이죠.
상당히 단단해서 보통 차나 수프등에 불려먹어야 했으며 초기에는 통조림이지만 통조림
깡통 자체가 무거워 셀로판이 입혀진 주석박으로 포장된 후 다시 방수지로 만들어진
봉지속에 넣어집니다.
개당 100g가량되는게 2봉지가 들어갔다죠.

육류 혹은 생선 통조림은 Fleischkonserve라 불렸고 처음에는 150 ~ 200g의 작은
통조림이었으나 후일 200g이상의 큰 것으로 변화합니다.
흔히 들어갔던 메뉴는 Schmalzfleisch라고 불린 스팸비슷하고 지방분이 더많이 들어가
끈적이는 돼지고기 통조림입니다.
그외 노르웨이나 프랑스등에서 생산된 정어리 통조림이나 양념된 쇠고기, 피가 들어간
소세지(Blutwurst)나 간소세지 페이스트등이 존재했다 하죠.

커피는 보통 탈지분유와 혼합된 형태로 들어갔고 전쟁중에는 대용 커피가 들어갑니다.
여기에 더해 별도로 150g가량의 농축 수프 캔이 포함되기도 합니다.

Halbeiserne Portion (Kleine Portion)은 Eiserne Portion의 축소형으로 Eiserne
Portion에서 딴걸 빼고 건빵과 고기 통조림만으로 구성됩니다.
지급과 사용은 Eiserne Portion과 비슷한 방식이었죠.
명령없이 손대면 안된다는.

Grosskampfpackung는 칼로리가 많은 초컬릿과 과자로 구성되며 전투직전 사기진작과
에너지 보충을 위해 혹은 추가적인 보충을 위해 지급됩니다.
예를 들어 장거리 행군을 했다거나 추운 날씨속에서 작전을 한다거나 하면 받을 수
있었다 하죠.
변동이 많지만 보통 다음과 같이 구성됐다 하죠.

100g의 초컬릿 (전쟁말에는 50g가량의 대용 초컬릿)
100g의 과자류 (쿠키나 플룻 바같은)
4 ~ 6개피의 담배.

초컬릿은 대전중반만해도 그런대로 제대로된 것이 나옵니다만 상황이 급박해지면서
질이 요상해졌다 하죠.
대용 초컬릿이 그 좋은 예로 초컬릿이라 부르기엔 민망한 지경이었다고 하니.

Nahkampfpackung은 그 작은 크기로 인해 축소형 Nahkampfpackchen이란 단어로 곧잘
불렸다죠.
1944년부터 지급되며 감미품과 과자류로 구성됩니다.
추가적인 칼로리 보충, 전투후 성과급, 야전 병원의 특식이나 회복식등의 성격을
가졌다 하며 당연히 그 특징상 절대 표준화되기 힘든 것이었죠.

한편 독일군은 사탕 종류를 꽤 지급합니다.
흔히 20g으로 포장되며 가장 흔했던건 시트론맛이었다고 하죠.


영국군의 전투식량은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1. Food Service Ration
   주둔지 식사에 해당하며 되도록 신선한 재료로 막 만들어 지급.
이건 뉴질랜드군의 야전 제빵소.
떨어트리면 발등깨지니 조심하시지 말임다.

2. Field Service Ration

   행군식량이거나 소부대 급식이 가능한 저장식품들입니다.야전취사장에서 만든
   식사외에 전투식량으로 구분될 법도한 소부대 지급식(Composite Ration, 미군의
   10-in-1과 같은), 보조적인 품목들이 포함.
프랑스 어딘가에서 밥해먹는...

3. Field Operational Ration
   Field Service Ration보다 더욱 가볍고 휴대가 쉽게 만들어진 것으로 개인을 위한
   전투식량들.

4. Special Purpose Ration
   특수임무 수행, 장갑차량 탑승병, 극한지용등등 전혀 일반적이지 못한 상황에서
휴대가능한 식량들.

5. Emergency Ration
   생존식이자 정상적인 급식이 곤란한 최후의 상황을 위해 지급.
   흔히 사용된 것은 General Purpose Emergency Ration이라 불린 것으로 12개의
   비스킷, 2개의 초컬릿 바, 12개의 비타민 포함 초컬릿맛 정제가 1개의 깡통에 들어간
   것입니다.

6. Supplemental ration
   음료나 차와 같은 보조적인 것들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소부대 지급식이나 외국산 전투식량(미군의 K나 D ration 같은)을 사용할 때
   영국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지급된 것이라 하죠.

24 Hour Ration은 1인 1일분의 식량으로 일반적으로 작전시 2개가 지급됩니다. (현재의
영국군도 비슷한 체계의 것을 사용중이고 명칭도 같습니다.)
야전식사(Field Service Ration, 행군식사에 준하는)이나 소부대 전투식량(Composite
Rations)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개인에게 지급되죠.
구두상자만한 마분지 상자속에 다음 품목들이 들어갑니다.

1봉지의 비스킷(Service Biscuits, Plain)
1봉지의 단맛나는 비스킷(Service Biscuits, Sweet)
2개의 건조고기나 고기통조림 혹은 정어리 통조림.
2개의 건포도나 땅콩 초컬릿 바.
1개의 비타민 첨가 초컬릿.
2묶음의 츄잉검(묶음 하나당 츄잉검 4개 포함).
2봉지의 인스턴트 오트밀
2개의 건조 고기 스프(meat broth).
2개의 건조차 블럭(tea block)
1봉지의 소금
4개의 각설탕이나 2봉지의 설탕.
2봉지의 분유 혹은 1개의 연유 통조림.

그외 과일 푸딩이나 잼, 치즈 통조림, 건조 과일, 단단한 사탕(boiled sweet)등등.

악세서리: 오프너, 성냥, 4장의 화장지.1장의 사용설명서.

병사들은 이들 품목을 분해해서 각기 편한 곳에 보관합니다.

비스킷은 그냥 건빵이고 그나마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라면 덜 단단해졌다는 점입니다.
플레인 비스킷은 별맛도 없고 짠맛만 나는 것으로 가로 5cm, 세로 2cm, 두께 1cm정도,
스위트 비스킷은 가당 연유맛으로 곧잘 차와 함께 먹었다고 하죠.

육류는 흔히 쇠고기였죠.
영국인들은 beef-eater란 별명답게 쇠고기를 선호하며 그래서 돼지고기를 찾는게
쉬운건 아니었답니다.
동결건조 육포 통조림, 비프 스튜 통조림(영국군들은 흔히 M&V, Meat & Vegetable이라
부르오.), 불리 비프(bully beef)가 주종이었다 하죠.

건조고기스프는 부용(bouillon)을 동결건조시킨 것이고 오트밀과 흔히 아침과
저녁식사때 먹었다고 하죠.

건조차 블럭은 보통 각설탕 2개를 세로로 세운듯한 크기입니다.
병사들은 전형적인 영국식으로 차에 분유와 설탕을 같이 넣어 먹었고 전쟁중반부터는
아예 홍차잎, 분유, 설탕이 혼합된 것을 압축하여 굳힌 것을 지급합니다.
이 블럭을 뜨거운 물에 풀어서 먹었다 하죠.
차와 설탕, 분유 혼합물의 통조림.
차, 설탕과 우유(혹은 분유)는 영국과 영연방군에겐 중요한 것이었죠.

단, 이 차마시기는 1차대전때도 그랬지만 2차대전때도 물 때문에 불만이 많았답니다.
소독된 물에 차를 타면 분유가 석회분과 함께 침전하며 희안한 맛을 가진 것이
만들어졌고 아프리카에서는 염분까지 더해져 더 희안한 맛이 났다 하죠.

한편 병사들에게 가장 불만이 많았던 것은 우습게도 화장지였다 합니다.
4장이 들어가는데 용변용으로 쓰기엔 양이 부족해서 여분을 더들고 다니거나 아예
두루마리 화장지를 더 들고 다녔다고 하죠.


Composite Ration은 그저 Compo Ration이나 14 Man Ration이라 불립니다.
개인 지급인 24 Hour Ration과 조리후 단체지급인 Field Service Ration의 중간쯤에
위치한 것으로 영국군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형태입니다.
A ~ G까지 7개 메뉴로 구성된 14인분이 나무상자에 포장되죠.

내용물은 고기 요리와 빵종류의 주식에 부가적 품목들, 악세서리로 구성됩니다.
한가지 색다른 점은 이건 모두 꺼내서 나눠먹는 계념이었다는 겁니다.
미군의 10 in 1은 개인에게 분배 지급을 중점으로 하지만 영국군의 14 in 1은 전체를
꺼내어 모두 앉아서 나눠먹게 되어있어져 있었던 거죠.

보통 내용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16온스 고기요리 통조림 10개.
16온스 베이컨 통조림 3개.
16온스 정어리 통조림 8개.
7파운드 50온스 비스킷 깡통 1개.
30온스 농축 스프 2개.
16온스 마가린 1통.
2온스 사탕 깡통 2개.
14 혹은 28온스 푸딩 통조림 2개.
차, 설탕, 분유가 든 15온스 통조림 3개.
건조 야채 10온스 또는 18온스 통조림 2개.
비타민 첨가 초컬릿 14개.
담배 50개피 1상자.
성냥 1통.
소금
비누
화장지 84장.
상황이 좋다면 막구운 신선한 빵이 추가적으로 지급됐다고도 하죠.


소련군은 독일군이나 다른 연합군들처럼 딱히 정해진 전투식량이란게 없었습니다.
많은 소련군 병사들은 이전 시대의 병사들처럼 빵덩어리와 버터나 지방덩어리로 식사를
했으며 야전취사장에서 끓인 곡물 죽이나 스프종류를 받아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하죠.
또한 주변 민간지역에서 구한 식품이나 노획된 적의 식품류의 이용도 많았던 편입니다.
덕분에 전쟁중 소련군 병사의 군장에서 독일군의 식량이나 그저 종이에 싸인 빵 한
덩어리와 소시지 조각만 나온다해도 놀랄 일은 아니었던 것이죠.
전쟁 내 소련군은 식량의 질보다는 식량 공급 자체에 상당히 노력하며 덕분에 독일군
지역의 파르티잔들에게도 식량을 공급하는 위업(?)을 달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항상 쉽지는 않았고 특히 전선부근의 부대들은 그저 빵과 소금,
버터나 지방, 물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다면 다행이었으며 현지 징발(자발적이거나
강제적인)이나 노획은 결코 무시되지 못했다 합니다.

보통 하루 급식량은 다음과 같았죠.

빵은 호밀빵이 주종으로 주변의 곡물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여름에는 800g가량,
겨울에는 900g가량이 지급됩니다.
육류 150g가량.
곡물가루 100g가량.
마카로니와 같은 가공품 30g가량.
야채 50g이상.
날생선 혹은 저장된 생선류 100g가량.
지방분 30g.
설탕 30g.
차 5g.
소금 32g.
담배 20g.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아침과 저녁에 따뜻한 요리를 받아먹을 수 있었다 하죠.
가장 흔히 먹었던 요리는 지방분을 가급적 듬뿍 넣은 곡물죽인 카샤나 감자와 양파,
마카로니, 육류등이 들어간 스프(시치)류였다 하죠.
그외 현지에서 구하거나 공급받은 보리, 해바리기씨, 과일과 감자, 가급적 건조시킨
소시지나 베이컨같은 저장육류, 생선(보통 정어리)통조림이나 생선포들이 휴대됐고
때때로 이런 표준화되지 못한 식단은 중대한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했다 하죠.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오랜 기간 저장되거나 혹은 잘못 저장된 곡물이나 식품류가 원인인
맥각중독이나 식중독이었다 하니.

담배는 궐련은 보기힘들었고 흔히 담배잎으로 지급받았다 합니다.
병사들은 직접 담배를 말아서 피웠으며 화장실용 휴지겸 담배종이가 되어줄
신문조각이나 삐라 뭉치등이 항상 휴대되죠. (정치장교의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들겠지만서도.)
또 많은 소련군 병사들이 담배맛은 인쇄물의 잉크에 따라 달라진다는 믿음을 가지기도
합니다. (어느 신문으로 싸니 맛이있더라 뭐 이런)

차의 경우 역시 잎상태의 것이 그대로 휴대되며 설탕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건 운이
좋았던 것이었다 하죠.

전쟁중반부터는 랜드리스(Lend-Lease)에 의해 영국과 미국에서 지원된 식품류도
공급됩니다.
고기와 생선 통조림, 초컬릿, 사탕, 비스킷, 건조 스프, 차등이 여기에 해당하죠.
특기할 사항은 이들 지원 식품들은 러시아어로 품명을 적은 레이블이 거의 반드시
붙여졌다고 합니다.

1944년부터는 소련내의 식품공업도 어느정도 갈피가 잡히기 시작되어 소련제
통조림등이 대량생산되죠.
이때부터 소련군의 군장속에는 소련제 고기 통조림이나 생선 통조림이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이탈리아군의 경우는 알려진 것만큼 잘먹었다 와는 거리가 좀 있습니다.
물론 아프리카에서 영국군이나 독일군이 보기 힘들던 신선한 야채가 있다든지 오렌지가
있다든지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잘먹었다거나 동결건조를 개발할
정도로까지 가지는 않았더라는 거죠.

먼저 식품류는 독일군이나 다른 곳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빵과 고기, 채소류에 한가지 특징이라면 파스타나 올리브 오일이 버터등을 대신해서
사용된다는 정도였죠.

가령 통상적인 이탈리아군의 1끼 식단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200g정도의 빵이나 그정도 양에 해당하는 파스타 혹은 쌀
200 ~ 250g정도의 고기
100g정도의 토마토나 감자가 포함된 야채류.
설탕과 커피.
소금과 식초.
와인 200ml정도
여기에 올리브 오일 약간과 라드, 토마토 페이스트에 치즈등이 포함됩니다.

양으로 보나 내용면으로 보나 거기서 거기죠.
단, 확실한건 적어도 독일친구들보다는 좀 더 잘먹은 면이 있습니다.

가령 아침에 빵하고 커피 한잔정도로 때우던 독일군에 대해 이탈리아군은 시리얼
종류나 오트밀에 빵과 버터가 나오거나 햄과 치즈가 든 샌드위치가 나왔었으니.
그외 다른 식단의 경우는 파스타나 감자 요리, 수프나 스튜종류, 빵, 후식으로 커피와
단 과자류가 나왔죠.

단, 장교 식단의 경우는 더 호화스러워질 수 있습니다.
나름 현대화된 면도 있었지만 이런 쪽에서는 근대적인 면을 벗어나진 못한거죠.

이건 장교용 테이블 셋입니다.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고 이거저거 각종 요리 기구가 달려있죠.
반면 병사들의 경우는 그냥 다른 동네처럼 반합이 전부입니다.

한편 전투중에는 저 위의 주둔지에서 먹던 메뉴보다 아주 단순한 것을 먹습니다.
그 전설적인 파스타조차도 전투지역에서라면 수프와 치즈로 범벅이 된 채로 빵과 함께
지급되버립니다. (시간나면 빵에 올리브유를 약간 적셔서 주긴 했답니다)
한마디로 수프와 파스타를 섞어서 잡탕을 만들어서 준거죠.
여기에 운좋으면 통조림 올리브나 말린 무화과나 대추야자등이 지급됩니다.

포도주조차도 그냥 주지는 않았고 곧잘 1/3 정도의 물을 타서 준데다 오히려 더
자주 준건 커피였습니다.
단, 커피도 아프리카에서는 더 쉽게 만들 수 있고 갈증을 덜 유발하는 차로 변경되기도
했죠. (이탈리아 커피가 진한 편이죠.)

한편 이와 달리 저장 식품으로 구성된 것들도 존재합니다.
거의 영국군의 14 Compo와 비슷한 형태의 단체 급식용이 있으며 이건 10인분 1일치에
해당하는 것이 들어갑니다.
보통 30여개의 고기와 생선 통조림 (개당 200g정도), 건조 수프 블럭, 건빵, 단맛나는
비스킷에 커피와 설탕, 소금이 들어간 형태입니다.
여기에 담배나 비교적 큰 - 800g정도 - 과일 통조림이 하나 들어가며 1인분 100g가량의
파스타가 추가되기도 합니다. (파스타 지급은 상황에 따라서)

한편 개인에게 지급되는 것도 존재합니다.
1개의 스팸 비슷한 고기 통조림 (200g)이나 생선 통조림.
1봉지에 2개가 들어간 건조 수프
2봉지의 건빵
1봉지의 단맛 나는 비스킷과 커피, 설탕, 소금이 지급됩니다.

이중 고기 통조림의 경우는 그게 어떤 것이건 인기가 없었다고 하며 그래서 독일군들은
이걸 늙다리라고 부른데다 이탈리아군은 무솔리니의 엉덩이라 불렀다고 하죠.

한편 저것과 달리 이탈리아군 식사에서 나쁜 점이 또 있습니다.
충분한 양을 운반하지 못해서 또 비축조차 못해 해당 지역에서 적당히 사거나 징발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하죠.
잘먹었다는 것과는 좀 거리가 먼겁니다.




p.s:
만약에 어느 누구든지 병사들이 대부분 만족할만한 밥을 만들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일입니다.
심지어 적군이 이 정도면 최고라고 감탄한 밥이라 해도 해당 군대에서는 맛없다고
불평한 경우가 허다하죠.

'MRE에 대해 불평하는 친구들을 모두 모아서 바르샤바 동맹의 전투식량을 1달만 먹이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MRE가 처음 나올 때, 한 미군 보급장교의 말.

가령 전형적인 소련군 전투식량의 1끼분 구성은 다음과 같았죠.
건빵.
고기 혹은 생선 통조림.
카샤(지방분 들어간 죽) 통조림.
분말 홍차와 설탕(비타민 함유).


p.s:
나폴레옹 시대 전후로 조리 도구로 곧잘 활용된 의외의 물건이 바로 총검입니다.
총검은 고기를 꿰서 불에 굽기도 좋았고 반죽을 꼽고 빵을 굽는데도 쓰였는데다 못쓰는
것을 굽히면 훌륭한 냄비 걸이로 변신했으니.


p.s:
우리가 아는 건빵 - 2개의 구멍이 난 조그마하고 단맛나는 - 은 일본에서 나온
놈입니다.
일본은 개화하며 메이지 시대에 건빵을 군용식으로 줘볼 생각을 했고 이미 영국물을
먹던 해군에서는 영국의 쉽 비스킷을 도입해보기도 하죠.
당연히 인기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러일전쟁때 지휘관들이 보기에는 물만 있으면 일단 배는 불릴 수 있는 부피적은
야전식량으로 인식, 본격적인 보급에 들어갑니다.
병사들이야 당연히 질색을 했고 이걸 완화하기 위해 단맛과 열량등이 강화된 건빵을
개발합니다.
밀가루외에 쌀가루를 넣은데다 효모와 탄산수소나트륨(중조, 중탄산소다)을 넣고
부풀어올려 식감을 좋게 만든데다 달걀 분말과 설탕 함량등이 증가된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건빵과 비슷한걸 만들게 되죠. (이것보다 크래커에 가까운 더 큰 것도
존재합니다)
여기에 별사탕까지도 넣죠. (별사탕도 일본거죠. 지금도 개업한지 백몇년된 별사탕
가게가 일본에 있을 정도이니.)

이런 배경 덕분에 우리가 아는 건빵과 거의 비슷한걸 일본 자위대에서도 전투식량으로
씁니다.
다만 별사탕 대신 오렌지맛이 나는 튜브에든 스프레드가 들어있었지만.
그리고 긴급구호식품 -지진등이 난 경우 지원되는 - 에도 건빵이 들어갑니다.


p.s:
건빵 나온 김에.
우리도 한 때 전투식량으로 건빵을 사용합니다.
1980년대 기준으로 노란색 알루미늄 증착된 마일라 필름이 입혀진 종이 봉투속에
400그램 정도 되는 건빵과 비숫가루가 든 작은 봉지가 들어간 놈이었죠.
그런데 이건 1980년대 넘어서며 없어집니다. (밥이 들어간 전투식량 1형부터 3형이
나오며 완전히 빠진거죠.)
대신에 간식용으로 이해하면 되는 증식(增食)용 건빵이 나옵니다.
우리가 아는 지금의 군대 건빵은 바로 이 증식용 건빵이며 단맛과 향미를 더 강화한
과자에 가까운 물건이죠.


p.s:
갖 구운 빵하니...
영국의 전투 전후로 부인부대원(여군)들이 가능한 곳에서는 야외에서 병사들에게 빵과
차를 대접했다 하죠.
그런데 병사들은 이 빵을 기피했다 합니다.
이유인 즉, 빵에 성욕감퇴제가 들어있다고 헛소문이 도는 바람에.
남자란 동물은 때때로 거세 공포증 때문에 환장하는 경향이 있다는게 맞는 말인거
같죠.

뭐 이건 그나마 약과긴 합니다.
2차대전중 키니네 수입을 못하던 독일, 영국, 미국등은 말라리아 치료제가 필요했고 그
와중에 퀴닌(quinine)계 약품, 그러니 합성 키니네들이 개발되죠.
독일이 먼저 성공해 아프리카에 파견된 병력들에게 지급했고 동맹국 이탈리아군에게도
지급합니다. (그런데 불행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독일은 당시 2가지 약품을 가졌었고
그중 하나는 성능이 별로라고 판단, 그걸 모두 이탈리아 군에게 줘버렸죠. 웃기게도
독일이 약효가 별로라 판단한 약이 오히려 약효가 더좋았죠! 마음은 곱게 쓰는게 좋은
겁니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노획된 이 약품은 분석되어졌고 미국은 새로운 말라리아 치료제를
합성하는데 힌트를 얻게되고 이렇게 등장한 말라리아약 아태브린(Atabrine)은
화학합성과 약학에선 2차대전까지의 비교적 성공적인 약품 합성의 예로 남게됩니다.
그러나 병사들 입장에서는 그 당시로선 효과만빵의 노란색 아태브린 정제에 대해
먹으면 꼬추가 안서는 약으로 인식됩니다.
덕분에 말라리아의 공포를 무릅쓰고 약을 안먹으려는 병사들이 나왔고 군의관들은 애를
먹었다 하죠.


p.s:
만약 고기가 신선할 경우 날고기를 그냥 먹은 경우도 있었다죠.
이러다 아주 호되게 당한 경우.

1619년, 영국의 유니콘호는 북서항로를 찾는다고 헤메다 1620년 캐나다의 허드슨만에서
괴롭게 죽어가죠.
덩시 북서항로 찾다가 천국에 주민등록 이전한 경우가 많다는걸 보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이들은 꽤나 묘하게 죽어갑니다.
선장의 비망록에서 곰고기를 날로 먹고 죽어갔다는게 나온데다 1897년 기구로 북극에
가보려던 스웨덴인들도 곰고기를 날로 먹고 죽었다는걸 찾아내며 이야기가 달라지죠.
결국 원인은 고기속에 포함된 선모충 때문인걸로 결론이 납니다.

교훈 1: 뭐든 익혀 먹어라.
교훈 2: 아무거나 주어와서 취식하지 말것.

두 교훈은 군과 같은 단체 급식 환경에서 잘 지켜지려고 하죠.
특히 군대의 경우는 이런 일을 하도 당해본지라 이 부분에 신경을 꽤나 쓸 수 밖에
없죠.
밥때문에 전투력이 왕창 깍이는걸 한두번 겪어봤어야지.

'그 좋은 쇠고기를 그냥 물에 넣고 회색이 될 때까지 익혀버리더라구요.'
--- 지옥의 묵시록중 한 구절.


p.s:
적어도 감자는 나폴레옹 시대까지만해도 천대받던 식품이었죠.
오늘날 천톤 단위로 소모되는 작물에게 미안할 정도로 말입니다.
파르망띠에(Antoine Augustin Parmentier)는 루이 16세와 나폴레옹 시대의 사람으로
7년전쟁 당시 군의관으로 복무하다 포로생활하면서 감자로도 사람이 먹고 살 수
있다는걸 알게 됩니다.
그 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밀을 대신할 수 있는 작물로 또 국가가 권장해서 제배를
해야할 작물로 감자를 알리게 됩니다.
어쩌면 파르망띠에에게 최고의 조상일듯.
파리 지하철역의 한 곳이라나.
그의 노력은 비록 그가 죽고 난 다음에 결실을 맺습니다만 그로 인해 더이상
유럽인들은 감자에 대해 독이 있다라는 편견을 가지지 않게 됐고 감자를 가장 늦게까지
거부하던 영국에서조차 19세기 중반이후로는 대중들의 식단을 개선한 작물로 인정하게
됩니다. (피쉬 앤 칩스와 같이 패스트푸드이자 값싼 먹을 거리이자 노동자들을
먹여살릴 음식으로.)
아, 감자가 환영받은 곳도 있습니다.
살기 팍팍하던 아이레와 유럽과는 관련없는 식생활 환경을 만들어가던 미국에서는
감자는 환영받던 식품이었죠.


p.s:
19세기까지 미군이 1일 1인당 지급(정상적인 상태라면)된 식사량입니다.
사용된 단위환산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온스(oz, ounce) = 1/16 파운드로 28.35g.
1 쿼트(qt, quart) = 1/4 갤런 = 2 파인트 = 0.95 리터.
1 질(gill) = 1/4 파인트 = 0.14 리터.

1775년, 대륙회의(the Continental Congress)에서 결정된 미군의 1일 지급량.

l6 온스의 고기 (쇠고기이나 없다면 돼지나 소금에 절인 생선, 햄같은 육가공품으로
대채)
6.8 온스의 콩에 1.4온즈 정도의 다른 곡물.
18 온스의 밀가루.
16 온스의 우유.
1 쿼트의 맥주 (혹은 사과주cider)
0.1830 온스의 비누와 0.0686 온스의 양초.

당시에는 술이 지급됐다는 점이고 맥주같은 것은 당당히 음료수이자 식량취급을 받죠.
우유나 술같은 것은 지급되지 않을 경우 그에 해당하는 돈으로 지급되기도 합니다.

'더 이상 맥주가 없어서...'
--- 메이플라워호의 항해일지중 한 구절.

1812년에서는 몇가지 변동이 생기죠.
20 온스의 육류.
18 온스의 밀가루.
1 질의 럼.
1 질의 식초.
0.64 온스의 소금.
0.64 온스의 비누와 0.24 온스의 양초.

보관성이 좋은 럼주가 맥주를 대채했고 양이 좀 더 많아집니다.
식초의 양이 많은데 이는 식초가 사실상 먹기 괴로운 급식을 그래도 먹을만하게 만드는
존재이자 당시의 속설인 괴혈병을 막아줄 것이라 예상도 있었답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1836년 알라모를 잊지 말자에서 시작해 미국은 1838년 멕시코와 한판뜹니다.

'예수가 와서 사정해도 내가 산타 아나의 병사를 쏘는걸 막지는 못할 겁니다.'
--- 1836년 4월 20일, 물속으로 뛰어든 멕시코군 병사들을 거의 학살해버리던 병사들을
     말리자 그에 대해 어느 병사의 대답

이 전쟁에서 미군은 술을 군대에서 빼고 대신 커피를 주게 되죠.
좋은 시절 다간거죠.

20 온스의 육류.
18 온스의 밀가루.
2.4 온스의 건조곡물이나 콩.
0.16 질의 식초.
0.96 온스의 커피(green coffee라고 볶지않은 원두)
1.92 온스의 설탕.
0.64 온스의 소금.
0.183 온스의 비누와 0.0686 온스의 양초.

남북전쟁이 터졌고 미국의 통조림 산업이 발달하는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당시 그 어떤 전쟁보다 통조림 식품과 건조식품이 대량으로 지급된 시기이기도 하죠.

당시 레이션은 크게 주둔지 식사(camp ration)와 행군 식사(marching ration)로 이제
확실히 구분됩니다.
뭐 계급이 되면 이런 것도 가능하긴한데 저기 기자양반 되게 신경쓰이네.

남북전쟁중의 주둔지 식사를 기준으로 보자면 대충 아래와 같이 지급받습니다.

일일 기준.
12온스의 염장 돼지고기(salt horse라 불린) 혹은 베이컨,
아니면 1파운드 4온스의 쇠고기(염장 혹은 신선한 것)

1파운드 6온스의 빵이나 그에 해당하는 밀가루,
아니면 1파운드의 건빵 혹은 1파운드 4온스의 옥수수가루.

100인분을 기준으로 다음 물품을 지급.
1펙(peck, 8quart에 해당하며 약 8.8리터)의 콩종류.
10파운드의 쌀이나 간 옥수수.
10파운드의 커피원두(green coffee)
8파운드의 볶고 간 커피(roasted and ground coffee) 혹은 1파운드 8온스의 차.
12 ~ 15파운드의 설탕.
1쿼트의 소금.
1쿼트(qt, 1quart = 1/4 갤런 = 2 파인트 = 0.95 리터)의 당밀.
4쿼트 가량의 식초.
40온스의 후추.
4.5 온스의 효모(yeast).
1파운드 4온스의 양초.
4파운드의 비누.

부가적인 다음 물품을 지급.
건조 야채(주로 감자와 당근)와 건조 과일. 보통 1인당 7온스가량.
가능하다면 다른 야채의 피클이나 양배추 피클 및 다른 종류의 야채(감자나 양파같은).

보통 이런 재료로 빵을 굽고 커피를 끓이며 스튜나 스프를 끓여 지급합니다.

행군시 식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1파운드의 건빵.
3/4파운드의 염장 돼지고기 혹은 1과 1/4파운드의 고기.
커피, 소금, 설탕, 기타 건조야채등.

위는 북군, 그러니 연방군 기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잘 정비됐고 비옥한 토지를 가졌으면서도 남부는 식량의 생산과
통제에서 실패했죠.
북부는 전쟁중에 누구도 살 수 있는 가격에 밀가루를 팔았으며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땅을 거의 공짜에 가깝게 줘서 농사를 지었던 반면 남부의 면화농장은 밀을 키울
생각을 그렇게 안했으니.
이 점은 전쟁초에 분명히 경고됐으나 깨끗이 묵살당했고 덕분에 남부연맹의 병사들은
1862년을 기점으로 굶거나 제대로 안된 식사를 했어야 합니다.
심지어 고기조차도 연방에 속하기로한 주들이 남부 연맹에 대해 고기를 줄리가
없던터라 노예들이 먹던 찌꺼기 고기조차도 먹기 힘들 지경이 되버리죠.

'어제는 설익은 사과를 구워먹었다오.'
--- 한 남부연맹군 병사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중.

한편 북군의 경우는 단조로운 식사에 질려버릴 지경이었죠.

'아침은 빵, 커피, 베이컨이었고 점심은 커피, 빵, 베이컨이었으며 저녁은 베이컨,
커피, 빵이었다.'
--- 한 북부연방군 장교가 1910년대에 남긴 글중에서.

이런 환경인지라 종군 상인이 팔거나 집에서 보내오는 담배, 초컬릿, 과일, 각종
통조림등이 들어간 식료품 소포는 귀중했죠.
단조로운 식단을 없에버릴 물건이었으니 말입니다.

'전쟁중 발전한 것중 하나는 바로 소포 포장기술이다.'
--- 어느 병사의 회고중
이건 당시에 지급되던 기호품들, 앞의 건빵 빼고.
노끈처럼 꼬아놓은 타래가 바로 담배. 씹거나 파이프로 피웠고
자루는 커피콩 자루,
그리고 커피를 끓일 주전자 겸 냄비

p.s:
통조림과 같이 공장에서 식품이 대량생산되자 이런 도시 전설들이 생겨나게 되죠.
특히 초창기의 지저분한 식품 가공업 - 시대를 막론한 문제지만 - 상황에서 소문은
더욱 커질 수 밖에요.

'어떤 통조림 혹은 소세지에 사람이 들어갔다더라.'

제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없어졌는데 나중에 비누 공장의 가마속에서 뼈만 발견됐다든지
간장 공장에서 사람이 빠져 죽었는데 그 간장이 맛있다고 팔렸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긴 합니다.

'여러분들이 봐선 안될 2가지 광경이 있다.
 하나는 공장에서 소세지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의회에서 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 비스마르크.


p.s:
우리도 월남전시 K ration이라 불린 김치, 깍두기, 된장, 꽁치등이 들어간 통조림들이
있었죠.


p.s:
셀로판은 1900년에 스위스의 Jacques Edwin Brandenberger라는 화학자가 만들죠.
곧 이 필름은 식품 포장등에 널리 사용되게 됩니다.


p.s:
전선에서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 먹는건 어찌보면 호사스러운 일일 겁니다.
그렇다고 적이 보는 앞에서 불을 피운다는건 20세기 들어서는 자살행위로 확실히
찍혀버리는 상황이 되죠.
상대가 신사적이면 괜찮은데 그게 아니면 거기다 포탄 한발 정도는 떨어트려줄 여유가
있었으니.
뭐 심한 경우는 태평양에서 미군처럼 항공 정찰하다가 밥하는 연기 보이면 거기다
기총소사나 폭탄 투하 또는 포격 요청을 해주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건 고역이니 몇가지 고안이 등장합니다.
1. 조용하고 강력한 버너 사용
    돈모아서 적당히 싸바싸바하면 안될 것도 없죠.

2. 고체 알코올이니 헥사민(hexamine)등을 사용한 간이 풍로 사용.
    이런건 곧잘 tommy cooker로 불립니다.
    크게 깡통에 들어간 것과 바람막이형태로 접힌 철판에다 올리고 사용하는 식으로
    구분됩니다.
이건 깡통 모양의 토미 쿠커
한 60년 훨씬 넘은 디자인의 타미 쿠커.
하얀색 입방체가 바로 헥사민

3. 숯을 사용

   깡통으로 적당한 풍로를 만들면 되죠.

4. 기타 기상천외한 재료 사용해보기.
   1차대전중 영국군은 한때 고래기름을 참호족 예방용으로 지급합니다.
   이 고래기름을 작은 통에 담고 헝겁 심지를 꼽으면 작은 버너가 되죠.
   고래기름만 아니라 등유도 사용되며 - 경유, 그러니 디젤유같은 경우는 태우면 눈이
   맵습니다 - 지금도 간혹 이런걸 만드는 경우가 있다고 하죠.
   손재주가 좋으면 포탄 탄피로 그럴듯한걸 만든 경우도 있답니다.
   한편 이건 좀 더 지나서 이야기지만 우러남전등에서 깡통에 칼로 구멍내고 거기다
   메추리알보다 좀 더 작은 크기로 만든 폭약(C-4같은)을 넣고 태우거나 프로필올등이
   함유된 바르는 모기약을 부어서 불을 붙이기도 한 경우가 있답니다.


p.s:
beef-eater 라는 별명은 프랑스인들이 붙인듯한 별명입니다.
원래는 고기를 먹을 정도로 괜찮은 수준의 입주 하인등을 의미하는 단어였으나 어느새
영국인을 지칭하는 별명중 하나가 되죠.
그외에 rosbif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구운 쇠고기(roasted beef)에서 나온거죠.

물론 이에 대해 영국인들은 프랑스인들에게 개구리 먹는 인간들이란 의미에서 frog란
별명을 붙입니다.
얘들 날씨가 더럽다보니 요리는 물론이고 성격도 더럽고 입도 더럽죠.
욕잘하기로 소문났고 bloody정도는 이젠 애교에 fuck이란 말도 1950년대에 이미 줄창
쓰던 말이었으니 어련하겠냐만은.
아, 그러고보니 독일인들은 양배추 대가리였죠.
크라우츠(krauts)란 별명 자체가 양배추와 관련됐다는 소리가 있으니.
또 아이레인들에 대해서는 potato eater입니다.


p.s:
차와 설탕에 대한 러시아의 오래된 이야기.

짜르는 성탕덩어리로 잔을 만들고 거기 차를 부어먹는다.
귀족은 차에 설탕을 넣어먹는다.
평민은 설탕을 보고 차를 마신다.


p.s:
2대전중 평균적으로 잘먹은 군대는 미군과 영국군입니다.
영국군도 앤잭들이 비교적 잘먹은 편이고 캐나다군도 나름 잘먹은 편이라죠.

우리 이 짓거리 언제까지 히야할까?
표범이 껍질 바꾸고 나 홀스타인종 젖소요 할 때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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