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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돌아보다

http://agile.egloos.com/4122099

영어에 리트로스펙티브(retrospective)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회고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에서 뒤를 뜻하는 retro-와 본다는 뜻의 spectare가 합쳐진 말이지요. 직역하면 뒤돌아보다는 뜻이 됩니다.

통상 프로젝트 관련해서 리트로스펙티브라고 하면 다음을 뜻합니다.

retrospective (rèt´re-spèk-tîv) -- a ritual held at the end of a project to learn from the experience and to plan changes for the next effort.
 
리트로스펙티브 -- 프로젝트의 끝에 행해지는 의식으로, 경험에서 학습하고 이다음 노력을 위해 변화를 계획한다.

--http://www.retrospectives.com에서 (번역은 김창준)

저에게 이 리트로스펙티브, 회고라는 말은 좀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가 성장해온 원동력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2000년 국내 최초의 위키 사이트를 만들고서 항상 고민했던 것이 어떻게 해야 건전한 위키 문화를 퍼뜨리고 지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습니다. 저는 그 해법의 한가지로 여러가지 관습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2001년 경) 만든 것이 Three Fs라는 것입니다. 사실, 느낌, 교훈(Fact, Feeling, Finding)의 세가지 F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뭐뭐뭐를 해봤다. 그래서 어떤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다"의 형식을 사용합니다.

위키에서 오래 살아남는 가치있는 글을 살펴보니 어떤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세가지가 고루 갖춰져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것들은 마치 의자의 세 다리처럼 서로 상보적인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지을까 고민하다가 -- 프로그래밍에서와 마찬가지로 위키에서도 기억하기 좋은 이름을 짓는 것이 무척 중요하지요 -- Fact, Feeling, Finding을 생각해 내고 3Fs란 말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형식은 위키에서 글을 쓸 때 뿐만 아니라 대화를 할 때에도 무척 유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가는 거의 모든 모임에서 이 3Fs를 적용해 보았습니다. 2002년에 시작한 르네상스 클럽은 3Fs만 전문적으로 하는 모임이 되기도 했지요. 각자 지난 모임부터 오늘까지 있었던 일 중 기억에 남는 것들에 대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을 느꼈으며,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겁니다.

감이 안오는 분을 위해 한가지 팁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3Fs를 적용하는 간단한 방법은, 불끄고 잠자리에 누은 채로 머리 속으로 오늘 하루의 3Fs를 생각해 보는 겁니다. 오늘 내가 뭘 했더라? 어떤 느낌이었지? 어떤 교훈을 얻었나?

한동안 3Fs를 적용하다가 뭔가 아쉬움이 남아서 3Fs에 F 두개를 덧붙여 5Fs를 만들었습니다. Future Action, Feedback이 붙습니다. 3Fs를 한 뒤에 바로 이어서, 나는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말하고, 시간이 지난 후에 그게 어떻게 되었는지 공유하는 겁니다. 3Fs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저는 이렇게 나름대로의 회고법을 만들어 일상에서, 모임에서, 또 컨설팅에서 수년간 사용을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2003년에 노먼 커쓰(Norman L. Kerth)의 Project Retrospectives라는 어마어마한 책을 접하게 됩니다. 핵폭탄급 책입니다. 위력이 대단합니다. 실제로 그 책을 현실에 적용해 보고는 그 효과에 놀라버렸습니다. 그리고 회고의 다양성과 깊이에 푹 빠져버렸습니다(참고로 이 책은 애자일 컨설팅에서 일하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읽어야할 책 중 하나였습니다).

(이미지 출처는 아마존)


그 이후 프로젝트 회고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컨설팅도 여러차례 진행할 정도로 경험과 전문성을 쌓게 되었습니다. 저만의 회고법도 다양하게 개발했고요.

그러다가 2006년도에 실용주의 프로그래머에서 Agile Retrospectives라는 책이 나옵니다. 사실 회고 분야의 선구라 할 수 있는 Project Retrospectives는 깊이가 있고 또 상세하지만 먹기 좋게 꾸며진 음식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 Agile Retrospectives는 실용주의 프로그래머 출판사의 전통을 따라 얇고, 쉽고, 실용적입니다. 요리법 모음집 같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책으로 회고가 좀 더 퍼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미지 출처는 아마존)


2006년 년말에 인사이트 사장님이 다음해에 애자일 시리즈로 어떤 책을 내면 좋을지 여쭤보시더군요 -- 그 때 애자일 시리즈 에디터가 돼달라고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첫번째로 추천한 책이 Project Retrospectives와 Agile Retrospectives였습니다.

그 말씀을 드린 후 한 동안 잊고 있다가 브라스 밴드를 통해 김경수님을 만나면서 인사이트 사장님께 김경수님에게 번역을 맡겨볼 것을 추천드렸습니다. 두 가지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리나라에 회고가 더 널리 알려지는 것, 또 하나는 경수님의 성장. 일단 후자는 된 것 같습니다. 책을 번역하시면서 동시에 여러 회고 경험을 쌓으셨고, 또 그 경험담들을 책 사이사이에 추가하셨더군요.

첫 번역인지라 고생을 하시더니 드디어 책이 나왔습니다. 애자일 회고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는 강컴)


꼭 프로그래머만 보는 책이 아닙니다. 관리자도 보고, 기획자도 보고, 디자이너도 봐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도 보고, 학생도 봐야 합니다. 꼭 팀이 있어야만 적용할 수 있는 책도 아닙니다. 혼자서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년말에만 하는 것이 아니고, 일주일, 하루, 심지어는 한 시간 단위로도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새로워지고 개선되는 것이 중요하다면 누구나 언제나 적용할 수 있고, 또 적용해야 합니다. (저는 부부 관계에도 회고를 적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회고를 할 때 중요한 것은, 과거를 들춰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서로의 감정을 공유, 이해하고 현재를,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결정하고 또 그걸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나온 실행이 가치 있습니다. 회고 자체는 가치가 없습니다. 회고를 통해 형성된 감정적 공유와 상호 이해가 가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회고 실력, 회고 진행 실력을 높이고 싶은 분들을 위해 한마디. 꼭 자신의 일상에서부터 적용해 보시길 권합니다. 가까운 곳에서 이루지 못하면 먼 곳에서도 이룰 수 없습니다.

--김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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