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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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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요 사상 드물게 20여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배호의 최고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가 담긴 삼각지 로터리는 현재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에 있는 사거리 평면 교차로 자리에 회전하는 입체교차로가 1967년 2월부터 건설 시작되어 12월 30일에 준공되면서(11개월만에 준공했으며 당시 공사비 2억 3천만원 소요)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또한 이 교차로는 이 노래의 히트로 크게 알려졌으며, 시민들의 많은 애환이 담겨 있는 서울의 명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최초로 회전하는 교차로이다보니 우스운 일도 일어났는데,지방에서 올라온 관광버스가 돌다가 방향감각을 잃어 다른 길로 내려간 일이나, 시골 노인을 태운 관광버스는 한 바퀴 돌 때마다 일년을 더 산다고 7번을 돌아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폭 7.5-15M, 총 연장 1,085M의 4방향 교차 시설(한강쪽, 서울역쪽, 용산 구청쪽, 이태원쪽)로서 서울에서 최초의 입체 교차로였습니다. 이로써 자동차 시대에 대응하여 교차로에서의 신호 대기로 인한 교통 정체를 해소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당시 준공식에는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참석하였으며(김현옥 서울시장과 김성은 국방부 장관 및 박종규 경호실장 등 참석) "돌아가는 삼각지"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배호씨도 참석 예정이 있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실제 참석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삼각지라는 이름은 원래 옛날에 한강, 이태원, 서울역 등 세 갈래로 도로가 나있어 땅 모양이 세모졌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도 있고, 늪지대의 "새벌"이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동네 이름이 일제 시대에 우리말 지명의 뜻을 제대로 몰랐던 일제에 의해 한자화하면서 잘못 옮겨졌는데, 원래 그 지역 동네 이름이 "새벌"(억세 벌판)이 경기 지방 방언으로 "새뿔"이라고 불렸었고, 새(세)를 삼(三)으로, 뿔(벌)을 각(角)으로 표현하여 삼각지로 불려진다는 설이 맞는 듯 합니다.물론 이 노래의 "돌아가는 삼각지"라는 가사는 이 입체 교차로가 생기기전인 1966년에 지어진 글로 돌아가는 교차로와는 상관없는 연인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간다는 가사의 곡이었으나 실제 돌아가는 로터리의 준공과 더불어 그의 히트곡은 회전하는 로터리로 인식되면서 더욱더 우리의 기억에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로터리는 갈수록 심해지는 교통 체증과 지하철의 개통 (현,4호선 및 6호선 환승역)및 구조물의 노후화로 지난 1994년 6월~11월 철거의 비운을 맞게 됩니다.(철거 공사 업체: 쌍용 건설 - 성도 건설)일반적으로 인물을 도로에 선정할 경우 떠난지 100년이 지나야 선정하는 기준도 있지만 그가 떠난지 30여년을 앞두고 관할 구청인 용산 구청에서는 그동안 팬들과 용산 구민들의 민원이 수차 접수되었고 행정 자치부가 1998년 7월부터 추진해온 관내 주요 도로에 길 이름 새로 지어주기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2000년 11월에 삼각지 로터리가 접해있는 한강로 1가 121번지에서 221번지에 이르는 길 (한빛 은행에서부터 국방부 서문에 이르는 도로 약 400M)를 배호의 길(배호路)로 선정하여 영원히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도록 하여 주었습니다.(도로표지판: 29. 배호길)아울러 대중가수 이름이 도로에 생긴 것은 이번 배호길이 처음입니다.

구청의 새주소 추진반은 그동안 인터넷 공모와 주민 여론을 수렴하였고 가요 "돌아가는 삼각지"를 노래해 이 일대의 지명도를 널리 알린 배호의 이름을 따야 한다는 의견이 대부분 차지했으며 전문가 심의 위원회에서도 만장일치로 통과되어 선정하게 되었습니다.또한 구청에서는 지하철 공사와 도로 포장공사를 끝남에 따라 녹지의 일부에 그의 노래비(기념비)를 세워 최초 그의 노래비를 세웠습니다.

노래비 건립은 오래 전부터 추진해오던 팬들 및 관계자들의 숙원 사업이었습니다.(2001, 6,4일자 건립 확정발표,-11월 13일 준공)이어서 삼각지 역이 소재하고 있는 미8군 부대가 이전되고 서울시청 청사가 신축되면 그의 노래비가있는 이곳은 영원히 서울의 명물이 되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그에 대한 추앙을 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될 것입니다.이 모든 일들은 배호를 아끼고 그의 최고 히트곡을 사랑하는 모든 팬들과 구민들 및 국민들에게 뜻 깊은 일이 될 것이며, 우리는 두고두고 그를 잊지 않고 되새길 수 있는 역사적인 일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http://blog.empas.com/fungwna/4373488[본문발췌]

돌아가는 삼각지 (91호 2005-03-25)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서울 삼각지 옛 고가입체교차로 배경
비오는 날 연인 생각나 찾은 사연
가수 배호 대표곡으로 크게 히트


(1절)
삼각지 로타리에 궂은 비는 오는데
잃어버린 그 사랑을 아쉬워하며
비에 젖어 한숨짓는 외로운 사나이가
서글피 찾아왔다 울고 가는 삼각지


(2절)
삼각지 로타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떠나버린 그 사랑을 그리워하며
눈물 젖어 불러보는 외로운 사나이가
남몰래 찾아왔다 돌아가는 삼각지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에 가면 <돌아가는 삼각지>노래비가 서 있다. 서울역(동쪽), 한강대교(서쪽), 반포대교(남쪽), 용산구청(북쪽)으로 가는 네거리 한 모퉁이 길옆에 세워져있는 이 비는 지난해 11월 7일로 건립 4주년을 맞았다.
노래는 삶과 세월을 담는다고 했던가. 요절한 대중가수 배호(본명 배신웅/호적명 배만금)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기념비로 11년 전까지 만해도 있었던 삼각지 입체교차로에서의 그 옛날 추억을 말해주는 듯 하다.
이인선 작사, 배상태 작곡의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에 발표돼 지금껏 국민가요로 애창되고 있다. 4분의 2박자 트로트풍으로 리듬이 흥겹고 멜로디가 부드러워 누구나 부르기 쉬운 까닭이다. 게다가 세상을 살면서 한번쯤 겪어봤음직한 사랑과 이별의 사연을 새긴 가슴 찡한 노랫말도 맛깔스러움을 더해준다. 비오는 날 헤어진 연인이 그리워 추억의 삼각지로터리를 찾아왔다 못 만나고 쓸쓸히 돌아가는 한 남자의 애틋함이 그대로 묻어나 있다.

이 노래는 배호의 대표곡이라 할만큼 유명세를 탔다. 25살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나타난 배호의 특유한 저음으로 구슬프지만 힘있게 넘어가는 창법이 팬들을 사로잡았다.
노래가 히트하자 각 방송사에서 집계, 발표하는 가요순위 1위를 20여 주 동안 차지하는 대기록을 남겼다. 노래가 나온 이듬해 MBC라디오 10대 가수상, TBC(동양방송) 가요대상 등 언론사들의 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가 만들어진 건 1966년 4월. 노래제목에 나오는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 12월 30일 국내 최초로 개통된 네방향 회전 입체고가차도를 말한다. 이 교차로는 서울의 교통발전을 상징하는 곳으로 한동안 관광명소가 됐을 만큼 이름났었다.
필자도 중학교 2학년 가을 서울로 온 수학여행 때 막 개통된 삼각지로터리를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고가도로를 만들어 길 아래 위, 동서남북으로 자동차가 사통팔달 오갈 수 있게 돼있어 그때로선 신기하기까지 했다.

노래사연은 가사내용 그대로다. 다만 ‘현실 속에 있을 수 있는 일’을 상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특이하다. 만남과 사랑, 그리움과 이별의 애틋함을 비오는 날 삼각지란 배경을 설정해 노랫말로 엮어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노랫말에 나오는 그 때의 삼각지는 어땠을까. 그곳엔 뭣보다도 선술집들이 많았다. 국방부, 미8군, 계룡대로 옮겨간 육군본부 등 군부대와 관련기관들이 몰려있었고 인사동에서 옮겨온 액자제작소, 상업화랑과 인쇄소, 상가들도 적잖았다. 자연히 부근 직장인들을 상대로 한 술집이 즐비했고 대구탕, 고깃집, 막걸리집 등 식당을 겸한 술집들도 덩달아 재미를 봤다.
술집색시를 비롯한 유흥업소아가씨들이 몰려드는 건 당연한 일.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에 홍등가가 있어 삼각지는 이래저래 사나이들의 발길이 잦았다. 최근 된서리를 맞았지만 용산역 앞 집창촌은 삼각지에서 한 잔한 뒤 2차‘즐기는 코스’였을 만큼 호색한들의 구미를 당긴 곳이기도 했다.술과 여자가 있으니 숱한 사연들이 생겨나는 건 인간지사 당연한 일. 노랫말처럼 어느 비오는 날 한 젊은 남자가 연인을 만나러 삼각지를 찾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만나지 못하고 그냥 쓸쓸히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을 작사가는 노랫말로 잘 그려냈다..


뭇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돌아가는 삼각지>의 입체고가차로는 1994년 7월 8일 철거되고 이젠 지하철이 그 밑을 지나고 있다. 가까이엔 서울지하철 4호선과 6호선이 만나는 삼각지역이 있고 노래비가 선 곳은 아담한 숲 속의 쉼터로 꾸며져 있다.
관할관청인 용산구청에선 배호가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된 2001년 11월 7일 노래 속의 장소에 노래비를 세웠다. 또 로터리부근 500여m(서울시 용산구 한강로 1가 121번지에서 221~228번지까지)의 도로를 대중가수 이름을 딴 최초의 ‘배호길’로 이름 붙였다.
‘교통섬’으로 불리는 쉼터녹지대에 세워진 노래비는 환희의 여인상이 하늘에서 땅으로 사뿐히 내려서는 자세로 돌아가는 삼각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두 손을 양옆으로 높이 들고 오른쪽 다리를 뒤로 쭉 뻗어 위로 쳐든 모습이 그 옛날 삼각지로터리를 돌아 쌩쌩 달리던 자동차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한다.

노래주인공 배호는 1942년 4월 24일 중국 산동성 제남시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부친(배국민)과 모친(김금순)의 4대 독자로 1958~1962년 김광빈 악단, 김인배 악단에서 드럼을 쳤다. 1962년 예명을 배호로 짓고 21살 때인 1963년 가수로 데뷔, 아세아레코드 소속으로 <두메산골>을 발표했다. 1964년엔 첫 앨범 <황금의 눈>을 내놓았고 ‘배호와 그 악단’도 운영하는 등 본격 가요활동에 나섰다.
인기가수대열에 들면서 그는 서라벌가요대상(1970년) 등 29개 부문의 가요상을 받으며 상종가를 쳤다. <파도> <안개 낀 장충단공원> <비 내리는 명동거리> <누가 울어> <안녕> 등 취입곡마다 히트했다. 배호의 취입곡은 줄잡아 300여 곡에 이른다.

그러나 세상만사가 다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로 그렇게 잘 나갔던 배호에게 건강상 문제가 생긴 것. 노래애착이 강했던 배호는 아픈 몸을 이끌고 무대에 서다 쓰러졌다.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투병 중 만 29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떠났지만 추모행사가 이어져 노래로 환생되고 있다. 1993년 제1회 배호가요제가 열렸고 2001년 12월 21일 ‘배호를 기념하는 전국 모임’(www.baehofan.com)도 창립됐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듯 가수는 세상을 떠나도 자신이 부른 노래를 남긴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그노래 그사연 ] 본문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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