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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보건이 최고의 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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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희의 사회탐구]보건이 최고의 복지다
정성희 논설위원

입력 2015-06-24 03:00:00 수정 2015-06-24 03:00:00

정성희 논설위원

금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을 뜯어보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는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은 53조4725억 원으로 무상복지 추세와 맞물려 정부에서 예산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르다. 이 가운데 81%인 43조 원이 복지, 나머지가 보건에 배정돼 있다. 복지는 시대적 요청임에 틀림없지만 보건과 복지의 불균형이 이렇게 심할 줄은 미처 몰랐다.


메르스,보건 홀대가 빚은 참사

2006년 32%이던 보건 예산 비율은 점점 줄어들어 현재는 20%도 안 된다. 그나마 보건 예산의 대부분은 건강보험 재정을 메우는 데 들어가며 감염병 관리 예산은 쥐꼬리만큼도 안 된다. 해외 유입 전염병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고 사스와 신종 플루 파동을 겪었음에도 보건은 정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보건과 관련한 정부의 유일한 관심은 의료관광뿐이었다. 복지부 장관으로 진영에 이어 문형표 장관을 기용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부에 대한 기대가 기초연금이라는 것을 정확히 드러낸다.

연금 전문가인 문 장관은 지난해 기초연금, 세모녀법(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담뱃값 인상, 국가보조금 부정 수급 근절 등을 성공시켜 정부 부처 평가에서 복지부가 1등을 하도록 만든 주역이다. 하지만 문 장관은 경제학자로 훌륭했을지 몰라도 ‘방역 차르’는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장관 개인에 대한 비난은 이번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

메르스 사태는 보건에 대한 정부의 오랜 홀대가 빚은 결과이자 시스템의 실패로 봐야 한다. 복지부 전신인 보건사회부의 주된 임무는 보건이었다. 콜레라나 장티푸스가 창궐하던 시절의 위생과 방역은 국민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된 문제였다. 그만큼 보사부의 역할은 중요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보사부 의정국장은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재무부 이재국장과 함께 ‘정부 3대 국장’으로 꼽혔다. 엘리트 의사들이 의정국장으로 왔고, 의사들은 공공의료 및 보건정책에 중요한 설계자로 참여했다.

전 국민 건강보험 시행이라는 중요한 과제가 실행된 이후 정책의 초점이 바뀌기 시작한다. 위생 수준이 올라가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정부는 공공의료가 어느 정도는 완성됐다고 믿었던 것 같다. 정부가 보건을 얼마나 홀대했는지는 복지부 장관에 의사 출신이 거의 없었던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장관 16명 가운데 의사 출신은 부동산 투기로 낙마한 주양자 장관 한 명뿐이다.

2000년대 초반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이 파업에 가세하면서 국민도 의사를 밥그릇에 민감한 이익집단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런 인식 변화와 함께 보건과 관련한 정부의 주된 업무가 정책설계에서 의사-약사, 의사-한의사,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의료계 내부 갈등 조정으로 변화했다. 돈벌이에 맛들인 의사들은 응급의료 공공의료를 외면하고 돈 되는 분야에만 뛰어들었다.


美日엔 복지부가 없다

복지가 시대정신이라고들 한다. 여야 정치권의 무상복지 경쟁이 복지로 비대해진 오늘날 복지부를 만들었다. 그러나 메르스 사태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만큼 중요한 가치는 없으며 이것이 국가의 최우선 임무임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복지부 대신 보건인적서비스부와 후생노동성이 있을 뿐이다. 이들 국가가 무엇을 최우선 가치에 놓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감염병으로부터의 안전은 그 자체로 공공재이며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 하는 최고의 복지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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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출신 보건부ㅡ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보건복지가족부-보건복지부 장관]
1948년 보건복지부가 사회부로 태동한 이래 51명의 장관이 바뀌는 동안 의사 출신이 임명된 사례는 7명에 불과했다. 비율로는 13.72%다.
보건부 시절 구영숙, 오한영, 최재유 등이 장관을 지냈고, 이후 권이혁 서울의대 교수가 제22대 보건사회부(당시) 장관, 문태준 前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제23대 장관으로 바통을 이어 받았다.

이어 박양실 前 대한여의사회 회장이 제27대 보건사회부 장관을 지냈고, 보건복지부로 조직명이 바뀐 후로는 주양자 前 국립의료원 원장이 제35대 장관에 올랐다.

이후 17년 동안 정치인과 관료, 학자 등에 밀려 장관직에 임명되지 못했지만 이번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정진엽 원장이 제52대 장관으로 내정됐다.


* 사회부 장관 전진한(漢)(1901년 ~ 1972년)

1948년 제1공화국 초대내각 사회부 장관. 보건부 없음.

경북 문경 출생. 1928년 일본 와세다[] 대학 경제과() 졸업. 1945년 독촉 전국 청년연위장()ㆍ1946년 민족 통일 총본부 노농 부장ㆍ1946년 대한 노총 위원장ㆍ1948년 제헌 국회의원ㆍ동년 사회부 장관()을 역임하고 1950년 2대 민의원ㆍ1954년 3대 민의원ㆍ1955년 노농위장()ㆍ동년 6대 국회의원 1965년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 위원ㆍ1966년 민중당 운영 위원ㆍ동년 한독당 대통령 입후보.

 [의사출신 보건부ㅡ보건사회부-보건복지부 장관]

* 보건부 장관 1949년 신설

 

구영숙(具永淑) (1892~ 1976)

 

황해도 황주 출생. 1920년 미국 애모리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25년부터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를 지내다가 1935년에 소아과의원을 개업하였다.

정부수립 후 초대 보건부장관, 1961년 세계보건기구(WHO) 한국수석대표, 1964년 미국파견 한국의학교육사절단 단장, 한국적십자사 총재를 역임하였다.

 

오한영(吳漢泳)(1898~ 1952)

 

본관은 해주(海州). 호는 영암(靈巖). 아버지는 한국피부과학의 개척자였던 오긍선(吳兢善)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이다. 1923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에모리대학에서 내과학을 전공하였다. , 1934년 일본 교토대학대학원에 수학하여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뒤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내과교수직을 담당하는 한편, 세브란스병원장직도 겸무하였다. 19506·25사변으로 부산피난시절 보사부장관에 임명되었다. 재임중 피난민구호를 위한 외국원조기관의 유치, 구호병원설치 등 공이 많았다. 성격이 쾌활하고 골프·테니스 등 스포츠를 좋아하였다

 

* 보건사회부 장관

 

최재유(崔在裕)(1906~ 1993)

 

1929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7년 일본 경도대학(京都大學)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33년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로 취임하여, 1945년 같은 대학 부속병원장·재단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뒤 19551956보건사회부장관, 1956년 이화여자대학교 부총장, 그 해 한국적십자사 부총재, 1957년대한문교서적주식회사(국정교과서주식회사의 전신) 사장, 19571960년 문교부장관,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19651972년 연세대학교 재단이사장, 1966년 이수화학(梨樹化學) 사장, 1972년 이수화학 회장, 19731993년 인덕학원(仁德學園)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권이혁(權彝赫)(1923~ )

 

의학자. 경기 김포(金浦) 출생. 194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51년 동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1956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 보건 대학원을 수료하고 귀국, 서울대 의대 조교수가 되었으며 1960년 동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부교수가 되었다. 1964년 보건 대학원 도시 인구 연구 회장을 거쳐 동년 경제 기획원 통계 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1965년 서울대 의대 교수가 되고 방역 대책 중앙 위원회 위원 및 보사부(保社部) 가족 계획(家族計劃) 심의 위원을 겸하고 1970년 서울대 의대 학장이 되었다. 5공화국 이후 문교부 장관과 보사부장관을 지냈다.


 

문태준(文太俊, 1928114~ )


 제7~10대 국회의원을 지낸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의사이다. 본관은 남평, 호는 덕암(德巖)이고, 경상북도 영덕 태생이다. 일제 강점기의 기업인으로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지낸 문명기의 장손이다.

 

195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토마스 제퍼슨 대학원을 수료하였으며 일본대에서 의학박사, 충북대에서 명예이학박사, 토마스 제퍼슨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육군군의관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하였고, 연세대학교 주임교수 및 외래교수를 지내고, 국회에서는 국회운영위원장, 국회상공위원장을 맡았고 민주공화당 당무위원, 경북도당 위원장, 1979년 대한의사협회 회장(3), 세계의사협회 회장, 의사협회 명예회장, 보건복지부장관, 한국사회복지협의회 회장, 대한신경외과학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2005년 현재 남평 문씨 대종회 회장 및 명예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의학 발전과 의료인 권리신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4년 서재필 의학상을 수상했다.

 

 

박양실 (1935년~)평안남도 평원 

 

1993 ~ 1993 27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한산부인과학회 회장

1991 산부인과학회 대의원 겸 이사 서울시 대학동창여성대표협의회 회장

1990 한국여의사회 회장

1983 대한산부인과학회 부회장

1969 ~ 박양실산부인과의원 원장

 

* 보건복지부 장관

 

주양자(朱良子, 193111~ )는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의학박사 학위 취득

영국유학(서전정부초청)

 

서울대 의과대학, 고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소릅티 미스트 클럽 한국연합회 제2대 총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우회 회장

한국여자 의사회 회장

국립의료원 원장

의료보험 관리공단 이사장

대한의학협회 고문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

자유민주연합 부총재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

 

 

정진엽 복지장관 내정자 "보건의료체계 발전시키겠다"(상보)

4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중책 맡아 무거운 책임감 느껴" 소감

 

(성남=뉴스1) 음상준 기자 =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4일 오후 "의료인으로서 (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복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관 내정자는 이날 간담회를 열고 "복지부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청문회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통과해 장관에 임명되면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서울 출신인 정진엽 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원자력병원 선임의사를 거쳐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직했다. 분당서울대병원 개원 이후 교육연구실장, 정형외과 과장, 진료부원장, 병원장을 역임했다.

 

정형외과 전문의인 정진엽 내정자는 병원 경영 전문가로 손꼽힌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 모자를 쓰고 직원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하이파이브를 할 정도로 탈권위와 소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진엽(鄭鎭燁,1955년 3월 10일 ~ )은 대한민국의 의사, 교수이자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의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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