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흐루시초프가 회고한 말년의 스탈린 (1)

http://epoque.egloos.com/3616560





스탈린과 보낸 마지막 몇 년은 정말 어려운 시기였다. 정부는 사실상 기능을 정지했고, 스탈린은 자신과 늘상 가까운 측근들로 소수집단을 선정했다. 선정된 집단 이외에도 여러 그룹들이 존재하였으나, 스탈린은 그들을 벌주기 위해 무한정 부르지 않은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공식적인 회합은 없었다. 기껏해야 모임이란 이런 것이었다. 즉, 스탈린이 중앙위원회 서기를 통해 소집을 명령하면 우리는 크렘린의 서재나 극장에서 모이곤 했는데, 대개 극장에서 자주 모였다. 저녁 7~8시경, 낮잠에서 깨어난 스탈린이 극장에 나타났다.

스탈린이 직접 영화를 선택했고, 특히 미국産 카우보이 영화를 즐겨 보았다. 그런데도 스탈린은 카우보이들을 곧잘 저주했으며, 그들에 대해 적당한 '이데올로기적 평가'를 내리고선 즉각 다른 필름으로 교체할 것을 명령하기 일쑤였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각국 영화를 닥치는대로 관람했다.

필름에는 자막도 없었다. 公報相 볼샤코프가 큰 소리로 통역을 했다. 사실, 그는 외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가 상영되기 전에 미리 스토리를 외우곤 했다. 그럼에도 볼샤코프의 '통역'엔 종종 오류가 있어, 우리들은 곧잘 농담을 지껄였다.

"방금, 그가 방을 나갔습니다. 이제 거리를 걷고 있군요."-이런 식이었다.

베리아가 볼샤코프의 곁에 있다가 가끔 통역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보십시오! 그가 뛰기 시작했습니다! 자, 이제 그가 달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불쾌한 史劇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보물을 싣고가던 해적선의 보스가 부하들을 차례로 죽인다는 스토리였다. 영화를 보면서 스탈린 주위의 인물들이 어떤 방법으로 사라져갔는지,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수많은 '인민의 적'들이 바로 이같은 방법으로 살해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제 배 좀 채우러 가야지. 안 그래?"                   

영화 상영이 끝나면 스탈린은 자신의 별장에서 열리는 심야 만찬에 동행할 것을 제안했다. 새벽 1~2시경으로, 보통 사람이라면 취침 중이어야할 시간이었다. 아침이 되면 우리들은 출근해야 했지만, 스탈린은 우리들 생각은 안중에도 없었다.

"예, 그렇습니다. 마침, 저희들도 시장한걸요."

배가 고프다는 거짓말은 일종의 반사(反射)운동과도 같은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차를 타고 스탈린의 별장으로 향했다. 베리아와 말렌코프는 항상 스탈린과 같은 차에 탔지만, 나머지는 각자 알아서 차를 탔다. 나는 불가닌과 동승하는 것이 상례였다.

자동차 대열은 곧잘 샛길로 빠지곤 했다. 내가 가끔씩 베리아와 말렌코프에게 '왜 멀쩡한 길을 두고 샛길로 빠지냐'고 물으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한테 묻지마. 우리가 길을 정하지 않아. 스탈린이 직접 정하거든."

스탈린은 모스크바 시가지의 지도를 보면서 번번히 다른 길을 지적했던 것이다. 경호원에게조차 미리 어떤 길로 가겠다고 지시하지 않을 정도였다.

별장에 도착할 때마다, 우리는 이전보다 경비가 삼엄해진 것에 대해서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문에는 온갖 자물쇠가 부착되었고, 별장 주위로 바리케이드가 세워졌다. 거기엔 두 겹의 담장이 있었으며, 담장 사이에는 경비원들이 주둔해 있었다. 전자경보장치를 비롯, 각종 보안용 설비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별장에서도 그 회의(이것을 회의라고 볼 수 있다면)는 계속되었다. 이것도 사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식의 사무 체계는 終戰 후 스탈린이 사망할 때까지 줄곧 유지되었다. 그가 2~3일 이상 소집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우리는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았다.

그는 뼈저린 고독감에 휩싸였고, 언제나 주위에 사람을 필요로 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우리들을 불러 영화를 관람하거나 대화를 시작하곤 했는데, 겨우 2분이면 끝나버릴 간단한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바람에 우리는 오랫동안 그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스탈린은 단순히 고독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 특히 암살범의 음모에 대한 깊은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했다. 만찬 석상에서 그는 접시에 놓인 음식들이나 술을 다른 사람이 먼저 맛보기 전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그가 정말 갈데까지 갔다는 증거였다.




그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심지어 오랫동안 시중을 들고 있는 하인들마저 믿지 않았다. 만찬에 참석할 때마다 우리는 그가 즐기는 음식들을 대접받았다. 요리사들은 꽤나 훌륭한 솜씨를 지녔기 때문에, 음식들은 모두 맛이 좋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절차에 따라 음식을 먹어야 했다.                  

"이봐, 여기 거위 내장요리가 있군. 니키타, 자네 이걸 먹어봤나?"

"아, 깜빡했습니다."

그가 거위 내장요리를 먹고 싶지만, 차마 겁이나서 먹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야, 이 청어요리를 좀 봐!"

스탈린은 청어요리를 굉장히 좋아했다. 항상 소금을 치지 않은 채 청어를 식탁에 올렸는데, 나머지 사람들은 각자의 입맛에 맞게 간을 쳤다. 내가 먼저 그것을 시식한 다음, 스탈린이 먹기 시작했다. 모든 식사가 이런 식이었다. 시식가 노릇을 면제받은 자는 베리아가 유일했다.

베리아는 우리가 먹는 음식들을 절대로 먹지 않았다. 스탈린과 같이 식사를 할 때조차, 자신의 별장에서 만든 음식을 날라다 먹었다. 스탈린을 오랫동안 모셔온 하인 페트로브나가 베리아의 시중을 들었는데, '당신의 풀을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는 마치 중앙아시아의 황소처럼 그릇에 놓인 풀을 손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폭소를 터뜨렸다.

어찌되었든, 이런 만찬은 매우 두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새벽녘에 잠깐 집에 들렀다가 이내 출근해야만 했다. 점심시간을 이용해 낮잠을 자두려고 애를 썼다. 낮잠을 자지 않고 심야 만찬에 참석했다가 잠깐 졸기라도 한다면, 좋지 않은 끝장을 보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스탈린의 酒量을 감당할 수 없었던 베리아와 말렌코프, 미코얀이 하인들에게 술잔에 술 빛깔의 냉수를 부어달라고 요구했던 것이 기억난다. 전쟁 전부터 스탈린의 만찬 석상에서는 과음 사태가 자주 벌어졌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스탈린은 사람들이 술에 만취해 추태를 부리는 것을, 퍽이나 흐뭇하게 느꼈다는 점이다.

스탈린은 유년시절, 구두수선공이었던 부친이 너무 자주 술을 마셨기 때문에 술값을 마련하기 위해 허리띠까지 팔아야했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수 차례나.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내가 아직 요람 속에 있었을 때, 아버지는 술잔에 적신 손가락을 내게 빨렸어. 그 때부터 벌써, 아버지는 내게 술을 가르쳤단 말이지."


덧글|덧글 쓰기|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