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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루시초프가 회고한 말년의 스탈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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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과 식사를 같이하는 것보다도 더 귀찮은 일은 그와 함께 휴가를 보내는 일이었다. 그는 특히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휴가여행을 떠날 때마다 나한테 이렇게 제안하곤 했다.

"남쪽으로 가세. 자네도 휴가야."

"예, 감사합니다. 모시게되어 영광입니다."

사실,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제안을 거부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은 꼬박 한 달동안 휴가를 보냈는데, 그는 자신의 방의 바로 옆에 내방을 정해줬다. 소름끼치는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끝없이 계속되는 만찬 석상에 앉아 스탈린과 함께 모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내가 '희생물'로 바쳐질 때마다 베리아가 나를 위로했다.

"이렇게 생각해보게. 누군가가 고통을 당해야만 하는데, 그게 바로 자네가 된 것이라고 말이야."




한 번은 내가 혼자 소치에서 휴가를 보내고, 미코얀이 다른 곳(수후미였던 걸로 기억한다)에 있을 때였다. 스탈린이 보르조미에서 우리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당시,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던 베리아까지 합쳐 카프카스 지방에서 휴가 중이던 우리 모두를 소집했다. 그렇게 우리는 보르조미에 모였다.

스탈린이 머물고 있던 별장은 크기는 컸으나, 정작 내부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이전엔 박물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침실이 따로 없었던 탓에, 우리는 모두 한데 모여 잘 수밖에 없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우리와 그는 다른 스케줄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모두 아침에 일어나 산책을 마칠 때까지도, 스탈린은 계속 잠을 잤다. 그가 잠에서 깨어나야 비로소 공식적으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스탈린이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는 바람에, 미코얀과 나는 그의 말동무로서 오랫동안 억류당해야만 했다.

하루는 스탈린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코시(헝가리 공산당 서기장)가 하루 쉬러 카프카스에 오겠다네. 나한테 허락을 요청하더군."

아무도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다시 스탈린이 입을 열었다.

"누구든 라코시를 불러서 이곳에 오라고 전하도록 하게."

라코시에게 전화를 걸자, 스탈린은 말을 이었다.

"그런데 라코시는 어떻게 내가 카프카스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분명, 어떤 첩보조직이 그에게 알려준 것이야! 기를 꺾어 놓아야지."

이렇듯, 라코시는 스탈린의 주요 경계대상 리스트에 오르고 만 것이다. 아무튼 라코시가 도착하자 우리는 그와 함께 식사도 하고, 술도 마셨다. 파티 와중에 라코시가 한 마디 내뱉었다.

"세상에, 이게 대체 무슨 꼴들이요? 이런, 주정뱅이들 같으니라고!"

우리도 이런 생활을 원치는 않았던 만큼, 라코시의 모욕에 견딜 수가 없었다. 라코시에게 공격을 퍼부었다(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뜻). 베리아가 스탈린에게 달려가 라코시가 우리들을 싸잡아 모욕한 사실을 고자질하자, 스탈린이 말했다.

"좋아, 두고 보자고!"

바로 그날 밤, 스탈린은 만찬 석상에서 라코시에게 마구 술을 권했다. 샴페인을 두서너병, 아니 얼마나 많은 술을 먹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깨어나자마자 라코시는 곧바로 도망가 버렸다. 스탈린은 기분이 몹시 좋았는지, 하루 종일 농담을 지껄여댔다.

"보게! 그 녀석이 지금쯤 어떻게 되었겠나?!"




분명, 1951년이라 기억한다. 52년에는 스탈린이 (19차 전당대회 일정으로) 모스크바를 떠나 어디에도 휴가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해, 스탈린은 아브하즈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그 때도 나와 미코얀을 불렀다.

하루는 스탈린이 별장 현관에 앉아 우리들을 응시하지도 않은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는 끝났어. 나는 아무도 못 믿어. 나 자신조차도..."

해를 거듭할수록, 그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모두 쇠약해지고 있음이 확실했다. 한 번은 스탈린이 불가닌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한참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거기, 자네! 이름이 뭐였지?"

"불가닌입니다."

"맞아, 불가닌이야! 내가 그것을 말하려고 했지..."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스탈린은 대단히 의기소침해 보였다. 그만큼, 의심증도 갈수록 심해졌다. 아브하즈에서 휴가를 보낼 당시, 그는 갑자기 몰로토프가 미국의 스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몰로토프가 미국에 체재할 당시, 뉴욕에서 워싱턴까지 기차로 여행했기 때문에 미국의 스파이라는 것이었다. 

몰로토프가 기차로 여행했다면, 개인 열차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는 식으로 엉뚱한 추리를 했다. 그렇다면, 몰로토프가 열차를 살 돈을 어디서 마련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몰로토프는 미국의 자금 지원을 받은 스파이라는 주장이었다. 우리는 몰로토프가 개인 열차를 소유할 수 없음을 스탈린에게 설명했다.

그래도 안심하지 못한 스탈린은 뉴욕의 비신스키에게 긴급 전보를 쳤다. 비신스키로 하여금, 미국에서의 몰로토프의 행적에 대한 뒷조사를 명령한 것이다. 몰로토프가 개인 열차를 소유하지 않았음은 물론, 그럴수도 없다는 내용의 답장이 날라온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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