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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은 최태민 둘러싼 김재규-차지철 암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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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은 최태민 문제 둘러싼 김재규-차지철 암투에서 비롯됐다"
김계원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증언













▲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이종찬 기자

“ 1979년 10.26은 박근혜(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딸이자 현재 한나라당 대표)를 둘러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간의 심각한 알력에서 비롯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0.26 현장에 있었던 핵심관계자 중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김계원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최근 중앙일보의 경제주간지인 <이코노미스트>(2005년 11월8일 발간)와의 회견에서 이런 요지로 10.26 배경을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10.26은 박근혜와 밀착했던 최태민 목사의 처리문제를 놓고 벌어졌던 차지철과 김재규 간의 암투가 불씨가 일어났다. 박근혜 현재 한나라당 대표와 최태민씨와의 밀착관계는 그동안 여성지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보도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이 문제가 10.26의 발단이었다는 주장은 김계원씨의 이번 증언이 처음이다.

10.26이 박근혜 때문에 일어났다는 증언은 향후 숨가쁘게 전개될 정치일정과 맞물려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김 전 실장의 증언 내용은 박 대표를 10.26의 피해자가 아닌 원인제공자로서 자리매김하면서 이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간조선> 11월호도 박근혜 대표와 최태민의 유착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이 박근혜 대표에 대한 박정희 추종세력의 조직적인 공세 차원에서 나오고 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보수 진영 내부에서 박 대표에 대한 모종의 움직임이 형성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김계원씨의 증언을 살펴보자.

김씨는 당시 청와대 경호시장이었던 차지철과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앙숙관계가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게 이제.... 차지철하고 김재규가 최태민(1994년 사망. 전 육영재단 고문이사) 때문에 많이 싸웠습니다. 최태민 아시죠? 다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두 사람이 싸운 것 나중에 보면 최태민 때문이다. 차지철이 최태민을 앞세우고 박근혜 양을 너무 업고 다니니까. 그러면 김재규가 ‘그러지 마라. 그러면 안된다’ 그러거든? 근혜양은 어머니는 없고 외로운 그런 때인데.... 근혜양은 자기가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해야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왜 자꾸 나서서 그러느냐, 이런 소리가 나오니까 이 소리가 최태민을 통해 많이 들어가거든요. 최태민이 근혜양 앞에서 자꾸 알랑거리면서. 그러니까 근혜양을 어렵게 만든 놈이 다 최태민이야! 그래서 저놈을 때려 잡아라, 그래 가지고 박 대통령이 최태민을 데려다 야단친 일이 있죠.”


김씨는 또 목사라는 최태민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어느 교회의 목사인지 알아본 적도 있어요. (알아보니)최태민이라는 목사가 없어요. 교파가 불명이라고 해요. 최대민씨를 큰 영애에게 누가 소개했는지 하는 것도 세간의 화제였어요. 그후에 증언이 나온 것이 있습니다만 나이가 많은 고등계 형사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었고...”

김씨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가 최태민과 밀착하면서 이러저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김재규가 박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하고 박 대통령은 최태민을 불러다 야단을 쳐서 박근혜 주변에서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조처를 취했다. 이후 최태민의 청와대 출입이 금지됐다. 일단락된 듯 햇던 최태민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박근혜가 여전히 그와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근혜양은 이에 중앙정보부에서 모함해 그런 거다, 최태민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아주 선량한 사람인데 왜 정보부에서 모략을 해 자기 아버지 생각을 흐려 놓느냐고 하면서 오해가 생겼어요”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박근혜가 박 대통령의 조처에 승복하지 않고 김재규에 대해 원망과 적의를 품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박근혜는 최태민이 총재로 있던 새마음봉사단의 명칭을 구국여성봉사단으로 바꿔 자신이 총재로 취임하고 최태민은 명예총재로 앉히고 계속 관계를 유지했다. 말이 명예총재이지 최태민이 사실상 이 단체를 원격조종하고 있었다. 여기서 본격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구국여성봉사단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대기업들로부터 성금을 모았다. 말하자면 정치자금을 거둔 것이다. 박근혜가 아닌 최태민이라는 처음보는 인물이 설치면서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거두었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웬만한 대기업에서는 최태민과 박근혜의 관계를 둘러싼 온갖 루머가 돌았다고 한다. 당연히 중앙정보부의 정보망에 이런 일이 걸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김재규는 박 대통령에게 최태민의 제거를 여러차례 건의했다고 한다.


사태가 악화되자 이 시점을 전후해서 박 대통령은 김재규, 박근혜, 최태민 3인을 청와대 집무실로 불러 직접 3자 대질심문을 벌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박,최 두 사람의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김 부장에게 다시는 그런 사실무근 보고를 올리지 말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는 김 부장에 대한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박 대통령은 심복인 김 부장을 버린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박근혜를 옹호했던 차지철 경호실장을 싸고돌기 시작했다. 차지철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강화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박 대통령의 후광을 입은 차지철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을 노골적으로 견제했다. 차지철은 심지어 김재규의 청와대 출입조차도 막았다. 두 사람간의 불화가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계원 전 실장은 이렇게 증언했다.

“그 구국여성봉사단인가 뭔가 집회를 청와대에서 합니다. 그런데 그 모임 멤버가 한 200명 된다고 들었는데 재벌들이 그 모임 멤버가 되는 것을 굉장히 크 영광으로 생각해요. 청와대에서 그 모임을 한번 하면 말이야, 재벌들이 큰 뭐나 된 것처럼 으스대고 이런 판이거든. 그걸 정보부엣 다 보거든. 문제가 된다 이거지. 그런데 (청와대)출입증은 경호실에서 발행하거든. 그러니까 또 싸움이 문제가 되고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김재규는 못하게 하고 차지철은 왜 막느냐 하고. 그래서 차지철은 김재규가 청와대 들어오는 것까지 막거든. 대통령한테 보고할까봐.”


중앙정보부장인 김재규가 청와대를 출입할 수 없는 수모를 겪게 된 것이다. 김계원씨는 김재규가 대통령에게 긴급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 되도 청와대에 들어올 수가 없을 정도로 차지철의 김재규 견제가 극에 달해 김재규가 자신을 만나러 오는 편법을 써서 간신히 청와대를 출입했다고 전했다. 욱하는 성격의 김재규가 느꼈을 인간적인 모멸감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이런 수모를 외면했던 박 대통령에 대해 가졌을 배신감의 강도가 어떠했는지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김재규가 궁정동 만찬에서 박 대통령과 차지철에 대한 무차별 난사는 그의 맺힌 응어리가 폭발한 것인지도 모른다.

최태민씨 문제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대권 행보에 돌출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친일의혹도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임에는 틀림없지만 그것은 긍극적으로 자신이 책임지고 해명해야할 사안은 아니다. 하지만 최태민씨 문제는 그 자신이 당사자인 문제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박근혜 대표가 최태민씨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냈던 기간은 일차적으로 1975년부터 1979년 10.26이 터지기 전까지 4년간으로 그의 최초의 공적 생활이 이루어 졌던 시기였다. 의문의 두 사람 관계는 새마음봉사단(나중에 구국여성봉사단으로 개칭)을 매개로 이뤄졌다. 말하자면 박근혜 대표는 최태민이라는 인물을 통해 청와대 밖의 세상을 알게 된 것이었다. 박 대표의 공적인 개인사에서 이 시기는 지워져 있다. 그가 당시 20대의 어린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공인으로서 유신말기였던 이 기간 동안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조직의 장으로서 했던 각종 언행은 대선국면에서 철저한 검증을 받게될 수밖에 없다.


최태민씨 문제가 관심을 끄는 또 하나의 이유는 박대표에게 과거사에 머물지 않고 여전히 현재도 진행 중에 있기 때문이다. 우선 최씨의 사위인 정윤회씨가 여전히 박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고 있다. 정씨는 박 대표의 핵심 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박 대표에게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민과 가까웠던 최필립씨도 현재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박 대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태민씨 인맥이 여전히 박 대표 주변에서 포진하고 있는 것이다. 최필립씨는 최태민의 청와대 출입을 금지하기 위해 김계원씨가 청와대 비서실장 시절 박근혜를 보좌할 전속비서실을 신설했을 때 비서관으로 기용된 인물이었다. 김계원씨도 <이코노미스트>와의 회견에서 최필립-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박 대표의 정수장학회 이사장직 사퇴는 순수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비난여론을 피해가기 위한 잠시 이사장직에서 떠난 것일 뿐 정수장학회에서 근본적으로 손을 뗀 것은 아니라고밖에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가운데 한사람인 박 대표 주변에 이처럼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 적지 않은 의문을 품게 만든다. 특히 박근혜 대표와 관련된 최태민씨 문제가 10.26의 불씨가 됐다는 김계원씨의 증언은 앞으로 전개될 대선 국면에서 큰 정치적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박정희 추종 세력이 김계원씨가 주장하는 박근혜-최태민 10.26배경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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