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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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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학이라고 하면 여러 사람이 여러 학문을 떠올릴 것이다. 일반인들은 사주, 팔자 등을 봐주는 역학(易學)을 떠올릴 것이고 공학도 또는 물리학도라면 역학(力學)을 떠 올릴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학(疫學)은 인구집단에서 병의 원인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영어로는 epidemiology라고 한다. 역학(疫學)은 다양한 학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대학원 과정에서부터 전공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예방의학의 한분야로 간주되어왔다.

   지난 주(2009년12월4일) 한국역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학회가 가톨릭의대에서 열렸다. 역학계의 존경받는 원로 두 분이 모두발제를 해주셨는데 첫 번째 발제를 해주신 김정순교수님(이분이 30년쯤 전에 미국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공부하시고 돌아오셨을 때 예방의학계에 미친 영향은 오늘날 김연아가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미친 영향과 비슷했으리라)은 미미한 학문이었던 예방의학(또는 역학)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위상을 갖게 되었는지를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설명해주셨다. 또 한분의 원로인 김일순교수님(여러 업적이 많으시지만 금연운동을 하시면서 국민보건에 기여한 바는 어느 누구도 따라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역학의 여전히 초라한 위상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담배소송 때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수많은 역학적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담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원고들이 주장이 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것이 역학이라는 학문의 낮은 위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역학이 질병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역학의 중요성을 사회적으로 알리는데도 함께 노력하자고 당부하셨다.

  관련해서 얼마전에(2009년 9월호에) Epidemiology라는 잡지에 왜 역학자(epidemiologist)가 노벨상을 받을 수 없는 지에 대한 흥미로운 논평이 실린 적이 있다.

200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3명 중 한명은 자궁암을 일으키는 인두육종바이러스(human papilloma virus; HPV)를 처음 발견한 Hausen 박사였다. HPV를 발견함으로서 해 전세계적으로 50만명이 생기는 자궁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을 개발하는데 기여한 Hausen 박사가 노벨상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일찍이 1950년부터 자궁암이 성접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서 Hausen 박사가 HPV가설을 세울 수 있게 했고 이후에는 수많은 역학연구를 통해 HPV 중 16번, 18번 바이러스가 자궁암의 원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서 백신개발을 가능케 한 역학자들의 역할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것 것이다.

  이 뿐만 아니다. 담배가 폐암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내서 공중보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Doll, Hill, Peto 같은 쟁쟁한 역학자들 역시 노벨상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아마 19세기 런던에서 유행한 콜레라가 테임즈 강의 오염된 식수를 통해서 전염된다는 사실을 처음 밝혀서 수만 명의 생명을 구하는데 기여한 존 스노우라도 노벨상의 대상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노벨상이 생기기 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어차피 해당 사항이 없긴 하지만)

   잘 알려진 것처럼 노벨상은 다이나마이트 발견으로 큰 돈을 모은 스웨덴의 노벨이 물리, 화학, 생리의학, 문학, 평화 등 5개 분야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준 사람에게 시상하도록 유언하면서 시작되었다. 노벨위원회의 규칙에 따르면 노벨상은 3명 이상에게 시상할 수 없고 죽은 사람에게 줄 수도 없다.(어떤 발견의 의미가 제대로 평가되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노벨상을 받기 위해서는 평소건강관리를 잘 하지 않으면 안된다. Hausen 교수의 경우에도 HPV를 발견한 것은 1977년이지만 무려 30년이 지난 후에 노벨상을 받았다)

   노벨 생리의학상의 중요한 기준은 새로운 발견, 그것도 획기적인 발견이어야 한다는 것이지 평생에 걸친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이런 면에서 평화상이나 문학상과는 선정 기준이 다르다. 평화상은 오바마의 수상에서 보듯이 단지 세계 평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시상하기도 한다.). 단일 업적의 크기, 예를 들어 가장 기본적인 생물학적 기전을 밝혀냈거나, 학문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놓았거나, 과학계의 수수께끼를 풀어냈거나, 질병의 진단, 치료 또는 예방에 획기적인 전기를 만든 발견을 했을 때 수상 대상이 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실험을 하지 않고 관찰연구 방법을 사용하는 역학연구에서 이런 획기적인 전기를 만들 수 있는 결과를 내놓기는 어렵다. 역학 연구는 한 두 사람만의 작업에 의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집단적인 노력으로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노벨상의 기준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역학 연구의 추세가 다학제가 참여하는 대규모의 연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역학자가 노벨상 수상 대상이 되기는 더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또 다른 장벽은 과학계에서 역학이라는 학문이 갖는 위상이다. 아직도 많은 기초의학자들은 실험실 벤치 밖에서 이루어지는 역학이라는 학문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실제로 우리나라 의과대학에서 실험논문이 아닌 역학논문에 의학박사를 주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기초의학자들이 역학의 위상을 낮게 평가하는 이유는 실험을 하는 학문에서는 작용기전에 대한 연구가 같이 이루어지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역학에서는 연관성만 밝힐 뿐 인과성에 대해서는 해답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학자들은 동물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하고 종종 잘못 해석되기 때문에 동물실험이 능사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흡연과 폐암의 예에서 보듯이 발암기전에 대한 지식이 없더라도 인간 질병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다고 강조하지만 아직 기초의학자들 사이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획기적인 발견을 3명 이하의 학자들이 이루내야 한다는 점, 영향력 있는 기초과학자들 사이에 역학이라는 학문의 위상이 낮다는 점, 역학은 연관성에 대한 대답은 주지만 인과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에 앞으로도 역학자들이 노벨상을 받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제학을 보면 다른 출구가 보인다. 경제학과 역학은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 학문 모두 가설 검정을 실험보다는 관찰 연구에 의존해서 하고 복잡한 수학(또는 통계)적 방법에 의존한다. 종종 다른 학문분야로부터 토대가 굳건하지 못한 학문이라는 회의적인 시선을 받는 다는 점도 비슷하다.(경제학은 최근의 경제위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해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두 학문의 결정적 차이는 경제학자는 노벨상을 받지만 역학자는 노벨상은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원래 노벨의 유언에 경제학상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1968년 스웨덴 중안은행에서 만든 경제학상이 노벨을 기념하여 수여되고 있을 따름이다. 일개 은행의 경제학상이 노벨상의 명성에 얹혀가는 행위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경제학이라는 학문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사실이다.

   반면에 역학자들은 경제학자들에 비해 매우 겸손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학(epidemiology)이 피부과(epidermis)가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이 역학부분에 수여된다면 학문이 한 단계 더 진전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역학자들은 아마 영원히 노벨상을 받지 못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했다면 그게 가장 큰 상이 아닐까?

   뭐 이런 요지의 논평들인데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이번 신종플루의 유행과 대처에서 보듯이 역학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학문이 되었다. 하지만 국민건강을 보호 증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좀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학문 자체를 발전시키려는 노력 뿐아니라 대외적인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운수 봐주는 학문이라는 인상을 주는 역학이라는 이름보다는 병의 원인을 찾는 학문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병인학’으로 이름을 바꾸고 호암상을 비롯한 주요 학술상에 ‘공중보건상’을 신설해 그 해에 국민건강 증진에 가장 많이 기여한 역학자들을 시상하는 것과 같은 노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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