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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사이언스 (Rocket Science, 2007) : 로켓 공학에 대한 영화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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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사이언스 (Rocket Science, 2007) ☆☆☆

[로켓 사이언스]는 배경이 고등학교라는 것과 제목만 알면 고등학교 과학 경진 대회에 대한 이야기로 예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이나 그 주위 사람들이 로켓을 만들 일은 없고 영화 제목은 자신이 처한 처지에서 벗어나오려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로 묶이는 주인공에 대한 은유입니다. 토론 팀에 영입된 것으로 계기로 뭔가 나아지려고 해도 처음부터 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주인공에게는 불리한 것들이 많고 이야기는 결코 기대할 법한 궤도로 가지 않습니다.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학교생활은 지옥이나 다름없다는 점을 [로켓 사이언스]는 아픈 방식으로 웃기게 그려내었고 주인공의 세상은 여러 별난 면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말더듬이인 주인공 할 헤프너의 집안은 별로 좋지 않은 편입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지쳐서 어느 날 집을 나가서 이혼했고 할의 형 얼은 툭하면 동생을 괴롭히곤 합니다. 한데 할의 학교생활에 비하면 나은 편입니다. 말을 더듬기 때문에 식당에서 피자와 생선 중 하나를 택하는 간단한 상황에서도 문제를 겪고 그는 외톨이나 다름없는 수준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학교 여학생 지니 라이어슨이 그에게 다가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고등학교 토론 팀에서 지니는 할을 파트너로 정하는데 노력에도 불구 할은 연습할 때도 버벅거립니다.

저는 그리 많은 토론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학창 시절 때는 배우라는 것들을 배우기만 하고 그냥 수업 중 질문이나 시험문제에 답하는 게 고작이었고 토론이 있었다 해도 상당히 형식적이고 흐지부지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켓 사이언스]의 도입부를 보면서 저는 상당히 흥미로워 했습니다. 큰 강당에서 두 팀이 한 주제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데 연설자는 제한된 시간 동안 빠르게 그리고 논리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뉴저지 주 토론 대회 결승전에서 지니의 전 파트너였던 벤 웩셀바움는 대단한 선수였고 입 안에서 말이 술술 나오기 때문에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승리가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순간, 그는 멍해져 버려 할 말을 잃어버렸고 그 이후로 그는 학교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이러니 지니가 다시 한 번 트로피를 차지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왜 할을 선택한 것은 좀 이상합니다. 그녀는 장애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토론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그를 설득합니다. 하지만 영리한 그녀의 줄기차게 쏟아져 나오는 말들은 들을 때만 그럴듯하게 다가오고 그녀에게는 다른 동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할은 상관없습니다. 일단 그는 그녀에게 반했고 둘은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말더듬은 그의 발목을 잡아 버리고 그는 상처받게 됩니다. 제대로 된 보복을 하려고 하지만 만사가 그에겐 그렇게 잘 돌아가지도 않지요.

할처럼 말을 더듬거리지 않아도, 우리나라 십대들도 할의 처지를 많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머릿속에 생각은 빠르게 돌아가지만 입은 그에 맞추어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그 동네 애들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저도 가끔 경험하는 일입니다). 할은 분명 영리한 소년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일은 매우 힘겨운 일이고 그 점이 역력히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그 때문에 영화에서는 영국 버전 TV 시리즈 [더 오피스]만큼이나 아프게 웃기는 상황들이 여러 번 등장하고 상황이 좀 나아진다 싶으면 현실은 찬물을 끼얹어 버리곤 합합니다.

감독-각본가인 제레미 블리츠는 이야기를 익숙한 경로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가운데 할의 주위에 여러 별난 캐릭터들로 채워 넣습니다. [로켓 사이언스]의 조연 캐릭터들은 단순해도 재미있고 나름대로 사랑스럽습니다. 지니의 건너편 집에는 지니에게 이상하게 집착하는 소년이 있고 그의 부모들은 특이한 부부 관계 개선 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할의 어머니가 늘 웃는 표정의 아들 헤스턴(아론 유)를 둔 옆집 한국인 판사([파고]에서 마지 건더슨과 좀 이상한 대화를 나눈 학교 동창 역이었던 스티브 박입니다)과 사귀는 모습은 생각보다 웃깁니다(“한국 전통 음식 아닌가요? 음식 냄새가 별나거든요.” - “참치 캐서롤인데요.”). 형 얼은 희한하게 성질 더럽지만 그래도 동생을 생각해주는 형다운 면도 있습니다.

주연인 리스 톰슨은 그냥 말더듬이 흉내 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좋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처음엔 할을 볼 때 기분이 답답해질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그 뒤에서 안간힘을 쓰는 그의 모습을 봅니다. 작년에 [트와일라잇]에 나왔던 애나 켄드릭은 왜 할이 지니에게 금세 반하고 그녀로부터 벗어나기 힘든지 이해하게 합니다. 지니의 의도는 결코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로켓 사이언스]는 우리가 예상한 것을 주기보다는 딴 방향으로 가곤 하면서 바람을 빼버립니다. 그 대신 예상을 벗어나곤 하는 이야기 진행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안쓰러움이 나오기도 합니다. 결국에 가선, 할의 처지는 처음과 비교해 볼 때 그리 많이 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했고 중요한 것을 배웠습니다. 할에게 어느 캐릭터가 “오늘 네가 싸우는 싸움은 네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것이야.”라고 말합니다. [인형의 집으로 오세요]와 같은 여느 씁쓸한 성장 영화들 주인공들이 동의할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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