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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와 에도 막부, 그리고 권력의 본질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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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교과서에서는 조선 통신사에 대해 꽤나 중요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일본이 먼저 요청하여 사절을 파견했다는 점, 일본 측에서 그 사절을 아주 극진히 대접했다는 점, 그리고 일본의 선비들이 앞다투어 조선 선비들을 찾아와 필담을 하고 학문을 토론했다는 에피소드 등에서 자부심을 느낍니다. 일본에 선진 문물을 전해주는 문화사절단! 이것이 조선 통신사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조선 통신사를 다른 각도에서 읽어보고자 합니다. 조선통신사는 순전히 일본 막부(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이지요)의 필요에 의해 불려간 것입니다. 1600년대 이후 에도 막부가 선진문화 흡수를 위해 조선 사절을 불렀을 리는 무방합니다. 이미 당시 일본은 시장경제나 농업생산력도 조선을 앞서고 있었고, 도자기 조차 임진왜란 때 도공 납치해 간 이후 해결했습니다. 조선 사절과의 문화교류도 선진 문물흡수의 맥락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동등한 문화 교류의 성격이 강하지요. 조선 사절 역시 아라이 하쿠세키나 오규 소라이의 창의적 유학해석에 영향을 받은 사람도 있고, 심지어 조엄은 통신사 따라 갔다가 고구마 훔쳐오지 않았습니까. 고로 조선통신사의 핵심 역할은 문화전수가 아닙니다. 대신 권력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문화 전수가 아니라 상호 교류)

이 쯤에서 에도 막부가 권력을 유지하는 기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에도 막부는 쉽게 생각하면 무사 정권입니다. 그 무사라는 것은 단순 칼잡이가 아니라 막강한 지역경제와 부국강병 이데올로기 등을 표방하고 있으나...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므로 생략하지요. 그런 무사들이 군웅할거하던 시대가 전국시대였고, 그 전국시대의 세파를 헤치고 살아남아 최종 권력을 잡은 자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입니다. 그의 정권이 곧 에도막부. 즉 에도막부는 오로지 '폭력의 우위'로 세워진 정권입니다.

그러니 에도 막부는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중앙의 에도 막부가 다른 지방 다이묘(영주)들보다 폭력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지방정권들이 에도 막부에 충성을 할 이유는 전혀 없어집니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 달리 유교이념 등의 정신적 이데올로기로 잡은 정권이 아니니까요. 굳이 말하자면 부국강병 정도였을까요? 네. 통일 후 역시 지방 다이묘 충성시키는 데 도움 안 되는 이론입니다.(주1)

그런데 평화 시기에, 지방 다이묘들에 대한 중앙 막부의 폭력적 우위를 보여주는 것은 꽤나 난감한 일입니다. 멀쩡한 시기에 재정과 인력 날아가게 전쟁 일으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때 막부는 권력을 상징을 통해, 또한 그것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어위광(御威光 일본말로 고이케) ! 에도 막부가 권력을 유지하는 매커니즘이라 합니다. (주2)

간단히 생각하면 어위광은 쇼군(막부의 최고 수장. 천황은 정치적으로 허수아비이고 종교적 상징이니 사실상 왕이나 같지요)의 행차입니다. 그러나 그 행차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 행차와 다릅니다. 일단, 행차 자체가 일년에 몇 번 없습니다. 특별히 경사가 있는 날이나, 새해 신사 참배 등의 경우에만 쇼군은 성 밖으로 나옵니다. '쉽게 볼 수 있는 얼굴이 아니다' 뭐 이런 거지요.

쇼군의 행차 전부터 백성들은 비상체제에 돌입합니다. 일단 쇼군의 행차 기간에는 모든 공공 업무 올 스톱. 한 마디로 공휴일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쇼군이 행차하는 길목에 사는 백성들은 죽어납니다. 길을 아주 깨끗히 청소해야 하거든요. 심지어 고양이와 개의 출입도 통제합니다. 행차 시간에는 불경하게 밥하는 연기를 피워서도 안 됩니다. 경건 또 경건해야 한다는 공포 분위기가 민간에게 깊이 젖어듭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백성들은 깨닫게 됩니다. 쇼군이란 자는 자신들의 일상과 신체를 통제하는 어마어마한 권력이라는 것을요. 요즘도 국경일 선포하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그리고 행차가 시작됩니다. 어마어마합니다. 권력을 시각적으로 과시하려면 제 1 고려사항은 역시 '규모'입니다. 당시 쇼군의 닛코(日光, 역대 쇼군 신위) 참배의 경우, 수행인원 23만명에, 잡병 62만명 말 30만 5천필을 동원했다고 합니다. 이 쯤 되면 행차가 시작되더라도 쇼군 얼굴 보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입니다. 쇼군을 수행하는 85만명의 대인원들은 그야말로 권위 그 자체입니다. 85만명을 통치하는, 그 85만명이 다스리는 전 일본을 통치하는...저 대 부대의 맨 꼭대기에 보이지 않는 쇼군!

쇼군의 민중에 대한 이와 같은 권력 각인 방식은 다이묘들에게도 내려옵니다. 에도 막부의 참근교대(산킨고타이)는 유명합니다. 그것은 지방 다이묘들이 1년은 쇼군이 있는 에도에서, 1년은 자기 영지에서 왔다갔다 기거하는 제도입니다. 쇼군이 다이묘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인데, 이 때 다이묘들의 행차도 쇼군처럼 으리으리 합니다. 통과 지역의 백성들 또한 죽어납니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행렬을 보면서 백성들은, 이 거대한 행렬을 안으로 불러들이는 쇼군이라는 존재에 대해 또 한 번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그 와중의 상공업, 여관업 발달은 말할 것도 없지만요)

최고 통치자의 행차란 이런 것이다란 선입견을 갖고 있는 일본학자들은, 그래서 한국의 영정조 행차 장면을 보면 깜짝 놀란다고 합니다. 무슨 놈의 왕 행차가 이렇게 소박하느냐고. 당시의 행차도를 보면 수행 인원도 쇼군의 행차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구경하는 민중들의 모습. 오늘날 연예인 보듯 사람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는가 하면, 그들 상대로 장사하는 엿장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징을 두드리며 갑자기 왕의 행차에 뛰어들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백성이 있었다는 대목에서 일본 학자들은 충격에 빠집니다. 쇼군 행차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런 풍경이 가능했던 이유는 영조와 정조가 권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권력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뭐 이러 마인드겠지요.

과연 그렇습니다. 폭력의 우위 하나만으로 권력을 잡았고, 시각적 행사로 권력을 유지시켜온 에도 막부의 권력자에게는 정치 실무나 유교적 소양보다는 연극적 의식을 치루는 능력이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이 의식이 먹히지 않을 때 - 그들의 권력은 모래성처럼 너무 쉽게 무너집니다. 

막부는 단 한 번 패해도 그것이 치명타였습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 때 영국에게 두들겨맞고 개항을 했어도 정권이 70년이나 유지되었습니다. 조선은 강화도에서 무력히 개항했어도 40년을 더 버텼습니다. 그러나 도쿠가와 정권은 1853년 페리 호의 압박 이후 15년 만에 바로 몰락합니다. 청과 조선이 전쟁에 져도 어떤 '정통성'을 갖고 있는 데 비해, 막부의 유일한 정당성은 '힘의 우위'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기건 지건 막부를 향해 누군가 포탄을 날린다는 것 자체가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막부는 가급적 미국과 전쟁을 피하고 평화적으로 협상하려고 노력했고, 이 점이 도리어 막부의 힘의 우위를 의심케 하여 지방 무사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메이지 유신인 것이지요.

개항이후 분위기가 어수선하니까 막부는 최후의 수단을 강행합니다. 또 다시 어마어마한 쇼군의 행렬이 이번에는 교토로 향합니다. 본래는 천황에게 문안인사 드린다는 것인데, 일본에서 웬만하면 쇼군이 교토 갈 일이 없습니다. 쇼군의 권위가 그만큼 실추되어서 다급했던 것이지요. 대신 이번에도 강력한 행사 동원으로 그 위엄을 과사하려고 했으나...평상시와는 반대로! 그 엄청난 행렬이 교토를 향해간다는 사실에 백성들은 다른 충격을 받습니다. 쇼군의 권위는 더 떨어지는 것이지요. 바람의 검심에 등장하는 껄렁하게 생긴 사무라이, 다카스키 산사쿠가 이 와중에 쇼군더러 "어이~~다이세이쇼군!!" 하고 막 불렀다가 죽을 뻔 하게 됩니다. (주3)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조선 통신사 역시 쇼군과 막부의 권위를 유지시켜주는 하나의 수단이었습니다. 조선 통신사에 극진히 대접했다고 하지만, 그 엄청난 수행인원을 보면서 일본의 백성들은 또한 권력 앞에 압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무려 외국에서조차, 저 인원이 에도로 향한다는 것에서. 단순 일본 내에 있지 않는 막부의 권력의 위대함을 무한히 느끼는 것입니다. 권력 유지를 위해 이런 특급 낭비가 가능했다는 당시 일본의 경제력에 놀랍기는 하지만, 이래야만 권력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뭔가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에도막부입니다.

그리고 그 후 허망하게 무너진 에도 막부를 생각하면 권력의 본질이란 게 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결국 어떠한 이념이나 정신적 요소 없이, 눈에 보이는 힘으로만 구성된 권력 만큼 무너지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사실은 지금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행사들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정권은, 그 만큼 그 기반이 취약하다는 반증이겠지요. 부시가 가증스럽게 기독교를 들먹이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또 위험하다는 이유도요. 이상, 정신적인 정당성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려주는 일본 어위광이었습니다.
주1. 사실 전국시대는 우리 이미지처럼 무사들만이 쟁투하던 시대는 아니었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말해 하나의 공권력이 무너진 체제였고, 무사들은 무사대로, 농민들은 농민대로, 불교계는 불교계대로 살아남기 위해 무장을 하던 시대였습니다. 때문에 이념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혼란의 시대, 도리어 불교 정토종 계열은 백성들의 구세주로 등장하며, 세력을 확장합니다. 불교의 평등사상에 영향을 받은 농민들은 농촌 공동체를 조직하고 스스로 무장을 하면서, 소작료 반대 농민반란을 일으키고 했지요. 무사, 농민, 불교...는 일본 전국시대의 3대 세력입니다.

그러나 불교계열이 오다 노부나가에게 박살이 납니다. 그야말로 박.살...아니 혹은 학.살이라 불러도 좋겠어요. 전술의 천재 오다 노부나가는 정토종의 본사를 철저하게 파괴하고, 불교 세력을 깔끔하게 제압합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농/병 분리를 수행합니다. 명목상으로 농민들은 평화롭게 농사만 지으라는 것이지만, 농민들의 무장을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지요. 결국 전국시대는 무사들의 승리로 마무리되고 나온 결과가 에도 막부...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역동적이었던 전국시대가 아쉽기도 합니다. (새로 쓴 일본사 참조)

주2. 출처는 모르겠고 2005년 1학기 이제는 국민대로 가신 박훈 선생님이 그러시더군요...--; 기말고사 4번문제;;

주3. 쇼군은 원래 정이대장군. 즉 천황이 임명한 일개 오랑캐토벌 장군이다...라는 말에서 장군만 따온 말입니다. 일본 동북부는 원래 에도 이전에 일본이 아니었다는 '하나의 일본'을 부정하는 근거이자*-_-* 쇼군은 일개 장수지 어째서 일본 전체의 통치자냐...이런 조롱이 담긴 말입니다. 그러니 다카스키 신사쿠가 죽을 뻔 할 만 하지요. 당시 쇼군은 스스로 코기(公家) 즉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 이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쇼군이라고 쓰는 것도 사실 사후적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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