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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내가 해봐서 아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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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
[독소전쟁]
[히틀러]
[동장군]


때는 1941년 12월, 동장군의 기습으로 독일군의 진격이 정체되었고, 독일군 지휘부는 히틀러에게 전술적 후퇴를 제안했다. 이같은 제안에 대한 독일 독재자의 입장은 50 킬로미터 후퇴한다고, 그곳이 덜 추운가라는 것이었다.

12월 20일 구데리안이 라슈텐부르크의 히틀러 본영을 방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구데리안과 히틀러를 대화를 보면, 총통이 판단을 내릴때 과거 자신의 전쟁 경험에 의존함을 보여준다.

만슈타인의 기록에 따르면, 히틀러는 항상 자신의 사병적 시각을 늘어놓았고, 그가 자신의 전쟁 경험을 통해 얻은 것을 회상하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은 그의 정당이 항상 고무시키려고 노력했던 프로이센적 미덕을 가진 군인의 사상과 감정과는 거의 아무런 관련도 없었다.


<<히틀러: 만약 후퇴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그들이 있는 곳에서 땅을 파고 들어가서 정사각형 모양의 진지를 구축하시요.

구데리안: 대부분의 지역에서 땅을 파는 것이 더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5피트 깊이까지 땅이 얼어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빌어먹을 장비들로는 땅을 파낼수 없습니다.

히틀러: 그렇다면, 곡사포로 큰 분화구를 만들면 될 것 아니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우리는 플랑드르에서 그렇게 했단 말이요.>>


러시아는 플랑드르와 여건이 다르다는 설명도, 포탄도 부족하다는 보고도 히틀러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한편, 독일군의 인적 희생이 뒤따르는 군사적 목표에 관한 토론에서, 구데리안이 그런 희생이 필요한가라 묻고, 장비도 부족하다고 토로하자 히틀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귀관이 몸을 아까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귀관이 부하 군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점을 안다. 나는 귀관의 그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귀관은 사건을 너무 가까이서 보고 있다. 나는 귀관이 병사들의 고통에 지나치게 민감하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그들에 대한 지나친 연민을 가지고 있다. 귀관은 더 물러서서 볼 필요가 있다. 

나를 믿으시요! 더 멀리 물러서서 현 상황을 보면, 더 명확하게 보이는 법이요!"  


만슈타인은 군사 지도자 히틀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분석을 내렸다.

"병사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히틀러는 전선의 병사 시절의 자신의 옛 신분에 대해 강조했고, 그는 싸우는 병사들에 대해 염려하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손실에 불과했고, 단지 숫자의 감소였고, 싸울수 있는 전투력의 감소만을 의미했다. 그것은 인간인 그에게 심각한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출처-

Burleigh, The Third Reich: A New History, 49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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