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섵달 그믐밤의 풍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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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길의 추억 한 컷>눈썹 셀까 조마조마··· 긴긴 그믐밤

설…밤새 때 밀어내고 알록달록 새옷 갈아입고…


밤새 때 밀어내고 알록달록 새옷 갈아입고…어른께 정성스레 인사 올리고 맞이하는 설날 아침! 묵은해 악귀 떨쳐내고 올해는 제발 좋은 일만 가득하길…!
설은 한해가 시작되는 첫날이자 우리민족의 최대 명절이다. 우리 조상들은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왔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을 신일(삼가는 날)이라고 해서 이날에는 바깥에 나가는 것을 삼가고 집안에서 지내면서 일년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게 해주기를 신에게 빌어 왔다. 정초 며칠 간은 집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없기를 무척이나 애를 썼다. 그래서 정월 한달 동안에는 남과 다툴 일이 있어도 참고 참으며 소리가 나지 않도록 모든 일을 조용하게 처리했다.
일년을 시작하는 첫 달에 단추를 잘못 채우면 매사에 풀리는 일이 없이 꼬이기만 한다는 믿음에서였다. 그래서 가족은 물론이고 이웃 간에도 말 하나라도 각별히 조심해 서로의 감정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평소에 서로 돌려쓰던 생활도구도 정초에는 담을 넘는 일이 없었다. 설사 연장하나를 빌려 왔더라도 남의 집에서 설을 쇠지 않도록 일일이 챙겨서 돌려줬다.
이웃 간의 새해에 대한 감정을 최대한 배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설은 모든 이들에게 묵은 것을 말끔히 정리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첫발로 여겨왔다.
설날 아침에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알록달록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온 가족들이 둘러 앉아 떡국을 먹으면서 새해의 첫 문을 열었다. 그래서 떡국은 ‘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까지 붙기까지 했다.
설날 아침이 되면 먼저 돌아가신 조상들에게‘차례’를 지내면서 조상들의 음덕을 빌었다.
그리고 웃어른들에게‘세배’를 한다. 세배를 할 때에는 새해 첫날을 맞아서 서로의 처한 환경에 따라‘덕담’을 주고받는다. 이렇듯 새해 첫날인 설날은 하루 종일 복을 빌고 소원성취를 바랐다.
설이 가까워 오면 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간에 나름대로의 설 준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어려운 살림살이라도 설날 아침에 집집마다 떡국은 끓여 먹었기 때문에 방앗간에는 떡을 하기 위하여 줄을 섰다.
읍내 장에도 미처 차례 상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다. 한해의 마지막 대목장을 잡으려는 상인들의 손놀림도 재빠르게 움직이며 한 사람이라도 더 붙들기 위하여 안간힘을 쏟았다.
특히 1년 365일이 마지막 가는 섣달 그믐날 밤은 아이들에겐 때때옷 입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가슴 설레는 밤이었다. 새로 사온 비신과 옷을 하루에도 수 십 번 꺼내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벗었다 하며 혹시 동생이라도 만질까 장롱 속에 감추고 날이 밝기를 거의 뜬눈으로 기다리는 그렇게 긴긴 날이었다.
어른들에게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마지막 설빔준비와 한해를 보내는 뒷정리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래서 섣달 그믐밤을‘제석’ 또는 ‘제야’라 했고 일반인들은 ‘까치설’ 또는 ‘작은 설’이라고 했다.
제석이란 뜻은 한해를 마무리하는 측면에서 모든 것이 제거되고 덜리는 밤, 즉 기쁜 일 슬픈 일 등을 청산하는 저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날은 부엌에서 마당까지 집 안 구석구석을 대청소했다.
못쓰는 가구에서부터 부서져 굴러다니는 연장자루 하나라도 일일이 찾아내 태울 것은 태우고 버릴 것은 버렸다. 헛간의 거름은 물론 소 마구간의 거죽까지도 말끔하게 걷어내고 새 것으로 갈아넣었다. 가축들도 이 날만은 편안하게 잠을 이루도록 특별히 배려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묵은해의 잡귀와 액을 물리치고 새해에는 가정의 화목과 풍년농사를 기원하기 위함이었다.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에 목욕물을 데워 온 가족이 헛간에서 덜덜 떨며 몇 바가지 끼 얹어 몸도 단정하게 했다.
아이들은 새까맣게 때가 쌓여 쩍쩍 갈라진 손등을 뜨뜻한 쇠죽에 넣어 불린 다음 납작한 돌로 밤새 밀어 때를 씻었다.
머리를 깎기 위해 몰려든 아이들로 이발관이 터져 나갈 듯 비좁았지만 한 두시간 순서를 기다리며 텁수룩한 머리도 깎았다.
설을 한번 쇠고 나면 아이들마다 빡빡 머리를 해 교실이 번들거릴 정도였다. 아이들에겐 이 모든 것이 귀찮은 일이지만 새 신과 새 옷을 입고 신나게 뛰어 놀 수 있다는 기분에 아무런 불평 없이 척척해냈다.
섣달 그믐날은 일년동안의 거래관계를 정리하는 날이기도 했다. 1년 동안에 미처 해결하지 못한 금전적인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빚을 받으러 다니거나 갚으러 다녔다. 빚을 안고 새해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한 밀렸던 외상값도 이날은 어느 정도 거둬들였다. 그러나 사정이 있어 자정을 넘기면 정월 한 달은 빚 독촉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 우리네 인심이었다. 아무리 쪼들려도 정초부터 돈을 빌리지 않았고 설사 받을 것이 있더라도 정월에 돈을 달라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다.
당시의 인심으로는 정초부터 빚 독촉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었고 오히려 악독하다고 욕먹을 일이었다. 한마디로 내 돈주고 손가락질을 받기 십상이기 때문이었다.
섣달 그믐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센다고 해서 아이들은 잠을 자지 않으려고 이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끝까지 버텨 보지만 결국 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한쪽 방구석에 쓰러져 자게 된다. 이 때 형님이나 누나들이 잠든 아이들의 눈썹에 떡가루를 발라 눈썹이 세었다고 자고 나면 놀려 주었다.
또 이 날밤은 잡귀를 막고 새해의 밝은 날만 있기를 기원하며 방마다 불을 밝혔다. 그리고 어머님이 정지의 부뚜막과 창고, 마구간, 화장실 등 주위를 깨끗이 쓸고 밤새도록 촛불을 켜 놓았다. 새벽의 셋째 닭이 울어 날이 새면 다 타지 않은 촛불은 거둬들였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섣달 그믐날 밤이면 집안 요소 요소마다 불을 밝히는 이러한 풍속을 해지킴(수세·守歲)이라고 하였다.
특히 정월 초하루 날에는 신을 숨겨 놓고 자는 풍속이었다. 이는 그믐날 자정을 넘기면‘야광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가 사람들의 신발을 신어보고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야광이’에게 신을 도둑맞은 사람은 그 해 운수가 나쁘다고 하여 설날 밤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신을 숨겼다. 아이들은 설날아침 일찍 일어나면 신발을 챙기기 바빴다. 그래서 ‘야광이’를 쫓기 위해 밤이 되면 대문가까이 체를 걸어 두는 경우가 많다.
어떤 집은 대문에 어떤 집은 마당에 높은 장대를 세워 체를 걸어두었다. 이는‘야광이’가 하늘에서 내려오다가 복잡한 체의 눈을 세다 잊어버려 다시 세는 것을 반복 하다보면 새벽닭이 울어 신을 신어보지 못하고 간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섣달 그믐날 자정이 지나면‘복조리’를 사라고 밤을 가르는 소리도 당시에는 흔하게 들렸다. 이 소리를 들은 집은 대문 밖에 나가지 않고 복조리 장수를 불러서 복조리를 샀다. 양쪽 다 새해 첫날임을 감안해 돈은 달라는 대로 주었고 복조리 장수도 받을 만큼 받았기 때문에 신간 할 일이 없었다.
첫날 이르면 이를 수록 복이 더 많이 들어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집에서는 귀를 쫑긋 세우고 복조리 장수를 기다리기도 했다. 이처럼 복을 불러오는 상징으로 자리잡은 복조리는 집집마다 안방 문 위나 부뚜막 위에 성냥이나 초, 실, 동전이나 지폐 등을 넣어 한 두개쯤 매달았다.
특히 설날 아침 까치 소리나 송아지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사랑방에 앉은 할아버지께서는 올해는 풍년이 든다며 넌지시 한해를 점치며 기뻐했다. 이처럼 설날 아침에는 동물의 울음소리 하나하나에 매우 신경을 썼다.
할머니나 어머니들은 정월초하룻날 저녁 머리카락을 불에 사르는 풍속이 있었다. 이는 지난 1년 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상자 속에 모아 두었다가 설날 저녁에 문 밖에서 태움으로써 병을 일으키는 악귀를 쫓기 위해서였다. 이는 당시에 유행한 장티푸스·콜레라 등 무시무시한 전염병을 염두에 두고 행했다.
근본적으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머리카락 하나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부모에 대한 보은의 표시인 것이었다.
이처럼 설은 모든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향한 새 출발의 시작점이자 한해를 열심히 살겠다는 자기 다짐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경남도민신문 /장병길 부장//2004년 01월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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