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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편집자, 일본 지성을 이끌다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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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송이 편집자, 일본 지성을 이끌다

인터뷰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저자 오쓰가 노브카즈



김일주 기자

출처 : <인터넷 한겨레> 2007 11 30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저자 오쓰가 노브카즈




일본 대표 지식서적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의

편집자 출신 사장 40년 경험 고스란히 담아

“출판사는 이익보다 좀더 나은 사회 추구해야”




“돌아보니 30년 동안 ‘안티-이와나미’짓을 했더군요.”



오쓰카 노부카즈(68) 전 이와나미쇼텐(岩波書店) 사장은 삶의 절반 이상인 40년을 일본을 대표하는 진보적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에 몸담았다. 그 중 임원과 사장을 지낸 마지막 10년 정도를 빼면 편집자로 오롯이 30년을 살았다. 그 30년 동안 ‘안티-이와나미’짓을 했다고? “적어도 내가 입안한 기획의 절반은 기성 권위를 무너뜨리는 쪽에 선 것들 이었습니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한길사·2만원)는 대학을 갓 졸업한 ‘애송이’ 편집자가 굴지의 출판사 사장이 되기까지의 40년 역정을 담은 회고록이다. 회고록은 1963년 일본의 고도성장기가 시작돼 한껏 기름진 토양 위에 번성하던 출판계가 경제 불황과 ‘활자이탈현상(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 현상)’으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시기와도 포개진다. 나아가 그 출판사가 ‘이와나미쇼텐’이기에, 그의 편집을 거친 책의 목록 자체가 1960년 이후 일본의 지성사를 투영하기도 한다.



창립 50돌 무렵 이제 막 입사한 신참 편집자는 편집부에 충만한 기운이 일종의 ‘일류의식’이었다고 회상한다. ‘50년 내내 이와나미쇼텐은 일본문화를 짊어져왔다’, ‘대중문화는 고단샤(講談社)가, 고급문화는 이와나미가’, 라는 말을 들어왔던 까닭이다. 저자에게는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제공하고, 보내고 맞이할 때는 전세 승용차를 사용하는 식이었다. 이렇듯 의전은 일류급을 달리는데, 그의 눈에 비친 편집부는 지식과 식견이 모자라 수준 낮은 편집회의를 열고, 외부에서 불러온 ‘대가’의 의견만 수동적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처음 몇 년 동안은 사직서를 주머니에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그는 새로운 기획을 내놓기 시작했다. ‘강좌·철학’ 시리즈의 기획회의에서는 구조주의의 기운을 감지하고 애초에 빠져 있던 <언어> 편을 끼워넣었다. 각각 10만 권 가량 팔려 ‘대박’을 터뜨린 시리즈 가운데서도 <언어>는 가장 많이 팔렸다. 일반 독자를 위한 계몽서인 ‘이와나미신서’ 60권을 내면서 당시 무명이었던 문화인류학자 야마구치 마사오를 발굴해 전후(戰後) 마르크스주의 흐름에서 벗어나려 했고, <콤플렉스>라는 책을 통해 카를 구스타프 융의 사상을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등 활약은 이어졌다. ‘총서·문화의 현재’ 시리즈를 통해 철학과 예술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던 시도는 1983년 계간 문화잡지 <헤르메스>의 창간으로 이어졌다. 그는 7년 동안 편집장을 지냈다.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번역본을 펴낸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이 책이 “편집자에게는 교과서 같은 책”이라고 평했다. 김 대표와 오쓰카 전 사장은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 등 아시아 다섯 개 나라의 인문 출판사 모임인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서 만나 친분을 다져왔다고 한다. 오쓰카 전 사장이 책을 썼다고 하자, 김 대표가 단박에 번역판을 내자고 제안했다.



김 대표의 평가가 무색하지 않게, 책에는 그가 40년 동안 담금질해오며 터득한 편집과 출판의 가치에 대한 확신이 담겨 있다. 실무적인 면에서 편집자 본래의 일은 “집필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시간을 들여 논의하고 박력 있는 책을 내놓는 것”이고, 그 결과물은 “새로운 사고방법을 산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인류가 지금까지 축적해온 것의 총체를 알아야 합니다. 24시간을 공부해도 모자랄 일이지만,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을 하게 하면, 지금의 현상을 파악하면서 나의 자유시간도 확보할 수 있지요. 그런 자리를 마련해 젊은 학자들 의견 교환의 장을 마련해 주는 게 편집자의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는 학회 성격을 띠는 각종 모임을 만들고, 책으로 그 결실을 보기도 했다.



그가 저자와 맺은 인간관계는 각별하다. 사장으로 있던 2001년 겨울, 이와나미쇼텐과 오랫동안 거래해온 전문서적 중개회사가 도산해 신문에 “이와나미쇼텐은 위기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30년 넘게 교제해온 저자가 오전에 다급하게 전화해 자신의 수중에 있는 모든 돈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일본은 ‘활자이탈시대’를 맞아 출판업이 그 어느때보다도 위기를 맞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확신한다. “출판사는 회사의 이익을 올리거나 그 나라의 이익을 올리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출판은 문화의 상호 이해를 돕고, 인류 복지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를 추구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나미쇼텐’은 진보성향잡지 <세계(세카이·世界)>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1973년부터 1988년까지 총 176회에 걸쳐 잡지에 연재됐던 <한국으로부터의 통신(韓國からの通信)> 덕분이다. 잡지에는 민주화 인사들이 몰래 빼돌린 원고가 실렸고, 그 원고들 덕에 박정희 유신 체제부터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한국의 인권·민주화운동 탄압 실태가 낱낱이 알려졌다.



오쓰카 전 사장은 “창립자 이와나미 시게오는 늘 아시아의 이웃나라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중국·한국에 대한 일본의 일방적인 침략을 어떻게는 출판업으로 막아보자고 생각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창립자의 정신을 이어받아 이웃 아시아 나라에 대한 동류의식을 확고히 다지는 흐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1913년 이와나미 시게오가 지인들과 출판사를 세운 이래 이와나미쇼텐은 2만 종 이상의 책을 냈다. 1914년 이와나미와 친분이 있던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출판사의 기틀이 잡혔다. 1927년 고금동서의 고전을 보급하기 위한 ‘이와나미문고’를, 1938년 학술적 기반에서 대중을 지향한 계몽서인 ‘이와나미신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패전 직후 1946년에는 잡지 <세계>를 창간했고, <사상> <문학> <과학>도 잇달아 창간하는 등 종합·학술출판사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1955년에는 ‘국민 사전’ <고지엔>을 펴냈고, 처음으로 일본의 고전을 집대성한 ‘일본고전문학대계’ 등도 출간했다. 우리나라 책으로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 등을 번역 출간했고, 리영희의 <대화>도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사장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은 편집자 출신이 사장을 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출처] 애송이 편집자, 일본 지성을 이끌다 - ‘책으로 찾아가는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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