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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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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의왕시 백운산에 위치한 백운사에 다녀왔습니다.

아직까지 이 신호등에 걸리지 않은 적이 없다. 이곳은 1번국도 수원에서 지지대 고개를 다 내려와 과천으로 가는 자동차전용도로를 지나고 나서, 의왕 방면으로 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두 번째 신호다.

운전하는 사람들의 습관이 다 그렇듯이 신호에 걸리면 옆 차를 힐끗거리며 쳐다보거나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핀다. 그도 지겨우면 여기저기 정신없이 걸려있는 간판들은 쳐다본다. 그러다가 나를 유혹하던 안내판 하나를 보며 지내 온지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전통사찰 백운사 3km’

어떤 문구가 나의 시선을 잡았을까? ‘전통사찰’일까? 아님 ‘白雲寺’라는 이름일까? 그도 저도 아님 3km라는 짧은 거리일까? 지금 생각해보면 짧은 거리였던 것 같다. 한번 마음먹으면 금방이라도 다녀올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제일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아침에 내린 비가 채 마르지 않은 어느 날 오후, 젖어있는 도로를 따라 그 이정표를 보며 백운사로 향했다.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놓칠까봐 유심히 살피는데 다행히 손바닥만한 안내판이 필요한 곳에 있어서 길을 헤매는 일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이 길은 백운호수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예전에 심심하면 드라이브하던 곳이다. 왜 그때는 백운사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었을까? 항상 거기에 있었을 텐데 말이다.

백운호수로 가는 길을 지나 ‘왕곡리’ 라는 이름의 좁은 마을길에 들어섰다. 이제부터 조심해야 한다. 강아지들이 맘 놓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다행히 차를 막고 서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재빨리 길을 터주지도 않는다. 이곳도 이제 봄 맞을 준비가 한참이다. 비료포대를 나르는 외발 수레가 바쁘게 지나다닌다.

길 왼쪽으로 수령 500년 정도 된 고목이 어느 회사 마당에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있다. 중종반정(1506년)이 일어난 다음해에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은행나무는 가을에 잎이 한꺼번에 떨어지면 다음해 풍년을 알려주었고, 시름시름 떨어지면 흉년이 든다는 것은 미리 알려준 신비한 나무이기도 하다.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경기-의왕-3)

다시 ‘왕림로’라고 적혀있는 길을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갔다. 여기 의왕시 왕곡동 왕림은 "왕께서 임하시었다"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 정조대왕이 화산(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 모신 부왕의 능에 참배하기 위하여 서울에서부터 행차하였다는 이야기는 정조대왕의 효성과 함께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 행차가 이곳도 지나갔다.
(청풍김씨묘문비)

밭 끄트머리에 위치한 ‘청풍김씨묘문비’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폐쇄된 것으로 보이는 초소가 보이고 이곳부터 ‘백운사’임을 알리는 입석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차타고 편하게 왔으니 절까지는 걸어서 가보리라는 생각에 주변 공터에 차를 세워놓고 걷기 시작했다.

비록 시멘트로 차 한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만들어 놓은 도로지만 걸어서 올라가니 주변 나무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또 계곡에서는 봄을 재촉하듯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잠시 잡기도 한다. 운동시설이 마련된 공터를 지나니 절집인 듯한 건물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가파른 경사 길을 잠시 헉헉대며 올라본다.

잠시 후 나의 시선은 풍경이 정신없이 흔들리는 대웅전 처마 바로 밑에서 멈췄다. 그리고 순간, 썰렁한 분위기에 눈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백운사 대웅전)

백운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대웅전과 요사채 한 채, 약수터, 약수 물, 물 떠먹는 바가지 두개, 그리고 손바닥보다 작은 돌 부처님, 동자상, 돌 하루방, 자동차 5~6대 정도 주차할 공간이며 함께 대웅전 마당으로 쓰이는 작은 공터. 정말로 많다. 많아....


의왕시 왕곡동 백운산 능선에 위치한 백운사는 경기도 지정 제36호의 전통사찰이다. 이 절의 창건 연도나 그 연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19세기 말에 창건되었으며 원래 절의 위치는 지금보다 3㎞정도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1894년(고종 31년)에 발생한 산불로 가람이 전소되었고, 1895년 청풍김씨의 주도로 오늘날 이 자리에 암자가 지어졌다고 한다. 이것이 백운사의 시작이다.

백운사를 대표하는 승려로는 경흔스님과 금오스님이 계시는데, 그중 금오스님은 우리나라 근대 불교사를 대표하는 스님 중 한 분이시니 이 절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971년에 정화스님이 주석하면서 법당을 확장하고, 요사를 증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렇다면 역사에 비해 건물은 근대에 지은 것이라는 얘기다. 뭔가 허전하다. 그리고 갑자기 시간도 많이 남는다.

잠깐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려고 하였지만 119 구조대에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나의 발길을 잡아버린다. ‘이곳은 사고가 많이 나는 위험지역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로프를 잡고 올라가야하는 등산로가 부담이 된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다시 내려가자.

차를 세워놓은 공터로 다시 내려오는 길, 올 겨울 방문객들이 눈에 미끄러지지 않으라고 길가에 마련해둔 염화칼슘 비닐봉지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한번도 쓰지 않았을 것 같은, 포장도 뜯지 않은 봉지들이 참 많이도 싸여있다.

‘백운사에는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답은‘역사’다. 절에서 처음 들었던 풍경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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