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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귀족 작위

http://sestiana.egloos.com/1842266


소년연금술사라는 대단한 물건 입니다. 라는 글을 보고 포스팅.
소년연금술사의 팬이냐 안티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귀족 작위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는 듯해서.
(전 소년연금술사를 안 읽었기 때문에 작품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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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작위에 대해 알아보기 전에, 우선 근본이 되는 봉건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 해 봅시다. 아, 물론 여기서 말하는 봉건제는 유럽의 Feudalism을 말하는 겁니다.
개념적으로 말하자면, 봉건제도는 은대지 제도beneficium와 종사 제도comnitatus의 결합품입니다.
중세 초기의 혼란했던 시대에 , 프랑크 제국이 건설되고 나서 왕은 봉신들에게 병역 의무의 대가로 토지의 용익권을 주었습니다. 봉신들은 토지에서 나오게 되는 재산으로 자신과 병사들을 무장시키고 왕이 소집할 경우 전쟁에 나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 토지는 왕의 것이었고, 때문에 원칙적으로는 토지는 봉신의 죽음과 함께 다시 왕에게로 귀속되었습니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이러한 토지는 군사적으로 복무할 적당한 후계자가 있다면 충성 서약을 통해 상속되기도 했으며, 또 한편으로는 토지의 용익권을 부여하는 은대지의 개념에서 상속이 허가되는 종신은대지, 즉 봉토feodum로서 하사되기도 하였습니다.
시대가 흘러가면서 점차 토지와 작위는 계승되는 것이 일반화 되었으며, 왕이 함부로 작위를 박탈하거나 상속을 거부할 수 없는 권리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원칙적으로야 왕은 봉토를 몰수하거나 상속을 거부할 권리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귀족들은 결혼관계를 통해 횡적으로 결속되어 있었고 또한 왕이 이유없이 경쟁자의 봉토를 몰수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는 사회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뚜렷한 이유가 없다면 다수 귀족들의 반발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심지어 남자 상속자가 없는 경우에도 봉토와 작위는 완전히 몰수되지 않고 잠재적으로 상속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작위의 상속은 일반적으로 가문의 힘이 흩어지지 않게 장자 상속을 원칙적으로 했으며, 결혼을 통해 귀족들 간에 횡적으로 연결되는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다만, 결혼 관계를 통해 작위를 물려받는 경우에 있어서는 엄밀히 따지면 '아내의 작위를 대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상속은 두 사람의 자녀 대에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작위는 국가와 시대마다 조금씩 달랐습니다. 작위가 잘 체계화 되어 있던 프랑스를 기준으로 볼 때 귀족에는 크게 9가지 단계가 있었습니다.

0. 귀족의 혈통을 가진 자 - "마크 오브 노빌리티"를 소지한 자
  (성씨 앞에 드de, 르le, 폰von, 반van 등이 붙는 사람)
1. 기사 - (프) Chevalier/Dame    (영) Knight/Dame     (독) Ritter/Frau
2. 남작 - (프) Baron/Baronne    (영) Baron/Baroness    (독) Freiherr/Freifrau
3. 자작 - (프) Viscomte/Viscomtesse (영) Viscount/Viscountess (독) Landgraf/Landgräfin
4. 백작 - (프) Comte/Comtesse    (영) Count/Countess    (독) Graf/Gräfin
5. 후작 - (프) Marquis/Marquise   (영) Marquis/Marquise   (독) Markgraf/Markgräfin
6. 공작 - (프) Duc/Duchesse     (영) Duke/Duchess     (독) Herzog/Herzogin
7. 공작 - (프) Prince/Princesse   (영) Prince/Princess   (독) Prinz/Prinzessin
8. 왕  - (프) Roi/Reine       (영) King/Queen      (독) König/Königin
9. 황제 - (프) Empereur/Imperatrice (영) Emperor/Empress    (독) Kaiser/Kaiserin

* 엄밀히 따지자면 0과 1, 그리고 8과 9는 '귀족 작위Noble Title'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영국의 경우 영국내의 백작은 Earl 이라고 하고, 대륙의 백작은 Count 라고 합니다.


공작Duke은 라틴어 dux에서 나온 말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지방 군대의 지휘관을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로마 멸망 후 프랑크 왕국에서 넓은 영토를 가진 사회적 지도자에게 이 용어를 가져다 사용했습니다. 흔히 '왕이 되지 못한 왕족이 갖는 작위'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지만, 실질적으로는 1600년대까지 공작의 작위는 대체로 왕실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습니다.

후작Marquess은 국경지대marches의 봉토를 소유한 백작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국경은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지역이었고, 때문에 충성심 높은 신하들에게 맡겨졌습니다. 백작은 하나 이상의 영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프랑크 왕국의 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직위였기 때문에 백작보다 한 단계 위로 여겨졌습니다. 후작은 때로는 변경백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백작Count은 라틴어 comes에서 왔습니다.
로마시대 코메스는 황제를 측근에서 모시는 관리였으며, 프랑크 왕국에서는 지방사령관을 의미했습니다. 영국에서 백작을 뜻하는 단어 얼Earl은 노르만 어에서 지도자를 의미하는 얄Jarl에서 나왔습니다.
일반적으로 공작이나 후작에 비해 하위 작위라는 느낌이 강하지만, 몇몇 강대한 백작들은 공작과도 능히 그 세력을 겨눌 만 했으며 (예컨대 백년전쟁 당시의 아르마냐크 백작의 권세를 생각해 보십시오.), 때로 어떤 백작들은 공작으로 지위가 격상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백작이라는 단어에서 나라country 라는 영어 단어가 파생되기도 했습니다.

자작Viscount은 본래 백작count의 보좌관을 의미하는 말이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의 vicecomites는 백작의 대리인이나 부관으로 백작 대신 영지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백작의 작위가 세습하는 것이 일상화 된 이후 자작의 작위 역시 세습되는 것으로 변했으나, 꽤 오랜 기간 동안 자작이라는 작위는 그 자신의 독립적 권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자작의 작위는 백작으로 만들 만큼의 가치는 없는 사람들에게 수여되기도 했습니다.

남작Baron은 프랑크 왕국에서 자유민을 의미하던 단어 baro에서 나왔습니다.
로마 멸망-중세 초기의 혼란기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그보다 권력 있는 상급자에게 보호를 요청하고 종사 관계를 맺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종사 관계를 통해 큰 땅을 소유한 영지를 남작령barony라고 불렀고, 만약 이 땅의 주인이 귀족이라면 남작baron, 평민이라면 남작령의 주인seigneur de la baronnie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남작령은 18세기 말까지도 자유롭게 매매할 수 있었고, 이런 이유로 남작은 소소한 귀족 작위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작위 체계에서는 남작은 왕으로부터 직접 토지를 하사받은 귀족을 의미했습니다. 영국내 귀족의 상당수는 남작이었기 때문에 영국에서 'Baron'이라는 말은 귀족, 혹은 영주를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실제로는 9단계 이상이나 되는 많은 작위를 모두 사용하는 곳은 몇몇 국가뿐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옛 영국(앵글로-색슨 족이 지배하던 시기)에서는 위의 표에 대치시켜보면 1, 2, 4, 7, 8에 해당하는 작위들 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국가에 따라서는 저 작위들 사이에 추가로 들어가는 작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핀란드,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지에서는 기사의 종자도 귀족에 준하는 신분으로 대접받았습니다. 또, 영국에서는 국가 재정을 늘이기 위해 남작 아래에 준남작(Baronet)이라는 귀족신분을 만들기도 했으며, 스페인에서는 '식민지 총독'을 공작과 왕족 사이의 귀족으로 대접했고, 독일에서는 후작(변경백=Markgraf)과 공작(Herzog)사이에 Fürst라는 신분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지배자는 대공(Archduke) 이라고 했고, 주권을 행사한 공작들을 대공(Grand Duke)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복잡하죠?
작위 체계는 국가에 따라서 단 3가지(기사, 백작, 왕)만 있는 곳에서 열 가지 정도로 복잡하게 나뉜 곳까지 다양합니다. 본래 백작(Count)의 부관지위를 가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던 자작(Viscount) 계급이 없는 국가가 많은 편입니다.

유럽 귀족의 작위는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기보다는 땅에 귀속되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때문에 상당수의 귀족들은 다수의 작위를 보유하기도 했고, 때로는 이 작위들을 분할상속 하거나 결혼예물로 증여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아키텐 공령과 가스코뉴 공령, 그리고 푸아티에 백령을 동시에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키텐과 가스코뉴의 공작이자 푸아티에 백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딸을 결혼시키려 하는데 상대방이 능력은 매우 뛰어나지만 작위는 가지고 있지 않다면 딸에게 푸아티에 백령의 권한을 주어 결혼대상자(사위)를 푸아티에 백작의 권한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절대왕정 시기 이전까지는 귀족의 작위가 반드시 그 귀족의 권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강대한 부와 권력을 가진 백작이 공작과 대등하게 권력다툼을 하거나, 엄청난 부를 가진 남작에게 후작이나 공작이 돈을 빌리러 오는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위를 번역하면서 중국식 오훈작(공/후/백/자/남) 체계에 맞추어 번역하는 일이 다보니, Prince와 Duke 를 번역할 때처럼 의미가 잘못 전달될 수 있는 부분도 종종 생깁니다. 본래 Prince 라는 말은 '왕자' 뿐만이 아니라 공작위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지배자, 군주라는 의미를 갖기도 하거든요.
예를 들어 Prince of Wales 라고 하면 '웨일즈 왕자'가 아니라 '웨일즈의 지배자', '웨일즈 공작'으로서 대대로 영국황태자에게 수여되는 작위입니다. 어느 영화에서는 이걸 '웨일즈 왕자'라고 번역해서 빈축을 산 일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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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대충 작위에 대한 설명을 한 것 같으니, 트랙백 된 글에서 귀족에 대해 언급한 것들에 대해 약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위에서도 설명했듯이, 중세 유럽에서 귀족의 작위는 기본적으로 세습되는 것으로, 왕이 이유 없이 귀족의 세습을 함부로 제한하거나 혹은 멋대로 아무에게나 작위를 하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인용한 글은 사실과 다르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이 귀족 작위를 '조종'하는 방법은 거의 결혼 관계에 달려있었습니다. 왕은 관습적으로 남자 상속자가 없는 부하의 미망인이나 딸의 결혼을 주선할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 이런 여성들은 왕에게 봉사하는 자들에게 돌아가게 마련이었고, 이런 여성들이 권리를 가지고 있는 봉토 역시 함께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전에 아무 작위를 가지고 있지 않던 평기사도 왕의 마음에 든다면 백작위를 받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윌리엄 마샬이 있겠죠. 윌리엄의 시대까지 영국에는 공작위가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윌리엄은 평기사에서 왕 이하의 최고 귀족으로 발돋움 한 셈입니다.
또한, 중세~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의 군사령관Field Marshal이었던 수많은 기사들 중에는 세습 귀족으로서의 작위를 가지지 않은 이들도 많다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역시 작위와 군대 직위에 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컨대, 부르봉 왕조 이전의 프랑스 마레샬은 90명이 넘습니다만, 백작 이상의 작위를 가진 귀족은 15명 정도 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관료로서의 지위는 대귀족보다는 작위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진출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합니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절대왕정 시기에는 작위의 하사는 전적으로 왕의 권한이었습니다만 이 경우 왕이 작위를 내리는 것이 혈통이나 세력에 의해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1.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던 신하인 로버트 더들리는 노섬벌랜드 공작의 다섯째 아들로, 작위에 대한 상속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도 그의 아버지는 반란 혐의로 처형당했기에 그 역시 런던탑에 유폐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1564년에 덴비 남작에 봉해지고, 그 다음 날(!)에는 레스터 백작위를 받습니다.
2. 로버트 더들리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윌리엄 세실 역시 엘리자베스 여왕의 총애를 받았던 바, 1571년에 벌리 남작에 봉해지고, 1572년에는 재무장관(!)의 지위에 오릅니다.
- 이 두 젠트리의 사례에서 절대왕정 시기에 귀족의 작위 승급의 일면을 볼 수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남작이라는 작위에도 불구하고 재무장관의 자리에 오른 것을 통해 작위와 관료로서의 직위에 큰 상관이 없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중세 세계에 비추어 볼 때 어느 왕국의 지도부가 친인척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중세 귀족들은 흔히 혈통으로 인해 횡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돈의 팔촌까지 따지더라도 그들 대부분은 귀족이 될 것입니다. 게다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관료로서 성공한 자(즉 왕에게 충실히 봉사하는 자)에게는 그에게 귀족의 작위를 부여해 줄 결혼관계가 성립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히 그 역시 그런 '귀족의 혈통관계' 속에 속하게 되므로 자연히 국가의 지도부는 친인척 관계가 줄줄이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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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써놓고 보니, 요새 쓰는 글들은 대부분 어떤 일을 계기로 옛날 글 가져와서 보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네요.
처음부터 이런이런 글을 쓰자! 해서 쓰는 게 아니라.
이 글만 해도 트랙백 한 글을 보고 '흠, 작위에 대한 글을 이글루엔 안올렸었구나' 하고 내친김에 올린거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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