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 근교의 Crepy en Valoir 에 위치한 활박물관에 있는 조선활과 화살집이다.(해당 박물관에선 키르기스탄의 활이라고 적어 놓았단다. 소장 경로를 모르다보니 이곳 학예사도 큰 실수를 한 것 같다.)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모습이 조선의 활임이 분명하다.(좌측은 화피단장 양식으로 보아 청나라나 티벳의 활 같은데, 백년, 아니 이백년도 더 지났을 법한 활에 현을 걸어 놓았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단한 내구성이다)
고자부분이 조선 말기의 양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걸리는 고리부분에 홈을 파고, 가오리가죽을 덧대었다. 북한에서 보관중이던 태조이성계 활의 고자와 똑같다.
시복에 담겨있는 화살깃부분의 장식이 우리네 것이 아닌 아랍계의 그것같은데, 확신이 가질 않는다.
뿔 밑에 무슨 재료를 썻나 확인키 위해 해부를 해 놓았나 생각 했었는데, 검은색의 물소뿔이 아닌 우리네 황소, 즉 향각으로 보인다.
길이가 짧은 향각의 특성상 도고자까지 이어지는 흑각과 달리 중간에서 끊긴다.
끊긴 자리가 우리 각궁부위 몇칭의 하나인 '후궁뿔끝'이다.
전체 길이는 133cm. 가운데 부분으로 갈수록 의 폭이 넓어져(경주활의 형태가 그랬다) 최고 폭 약 4.2cm로 아주 넓고, 두께는 1.2cm 정도이다.
고자쪽으로 용골형태의 정탈목이 이어진다. '조선의 궁술' 각궁제작에 대한 그림 설명에 확인되지만 요즘 활엔 조치원활에만 미세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심을 놓은 자리에 화피 단장을 하지 않고 밝은 계열의 칠이 되어있는듯 하다. 간각칠궁이란 활이 이 활 아닐까?
줌통은 나무든, 코르크든 댄것 없이 도피를 감았다.
시복은 선조 하사품 시복과 형태가 비슷하나 더 커보인다.
박물관에 남아있는 조선 후대의 활과 달리 고자 부분이 이태조의 활과 같고, 화살집 역시 후대의 초소형이 아닌, 선조하사품과 비슷한 실전용인 대형 시복임을 볼 때 그 연대가 제법 오래된 물건들인것 같지만,
혹 병인양요때 약탈해간 물건들과 함께 우리 군사들이 쓰던 것을 가져간 것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은 함부로 연대를 예측할 수 없고 더 알아보아야겠다.(실물을 만져더 보고 요모조모 자세히 관찰한 발견자 JJ씨는 약200년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활을 발견한 독일인 JJ 씨에게 추가사진을 요청하였다.
칠지 단장 부분을 떼어냈는지 색깔이 달라 보인다.
도고자의 형태가 요즘것과 별로 차이가 없어보이고, 후궁뿔끝까지 이어진 뽕나무 고자 정탈목이 확연하다.
윗장인지 아랫장인지, 취약한 후궁뿔끝의 각이 떨어져 나갔다.
혹 투피스가 아닌가 확인키 위해 시복의 뒷면 사진도 부탁했지만 없나보다.
추가로 보내준 사진으로 종합하건데, 1800년대의 '향각궁/후궁'으로, 군용으로 쓰였을 화피단장을 하지 않은 전투용활일것이다.
화살집은 표면재질을 볼 때 돼지가죽으로 보이며 투피스인지는 빠리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동그랗게 말려 있는 모습이 조선의 활임이 분명하다.(좌측은 화피단장 양식으로 보아 청나라나 티벳의 활 같은데, 백년, 아니 이백년도 더 지났을 법한 활에 현을 걸어 놓았다.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오는 대단한 내구성이다)
고자부분이 조선 말기의 양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현걸리는 고리부분에 홈을 파고, 가오리가죽을 덧대었다. 북한에서 보관중이던 태조이성계 활의 고자와 똑같다.
<태조 이성계의 활- 정밀한 사진이 아니라 아쉽지만 같은 사람이 같은 시기에 만들었다고 봐도 될 정도로 휜 정도 차이외엔 꼭 같다.>
시복에 담겨있는 화살깃부분의 장식이 우리네 것이 아닌 아랍계의 그것같은데, 확신이 가질 않는다.
뿔 밑에 무슨 재료를 썻나 확인키 위해 해부를 해 놓았나 생각 했었는데, 검은색의 물소뿔이 아닌 우리네 황소, 즉 향각으로 보인다.
길이가 짧은 향각의 특성상 도고자까지 이어지는 흑각과 달리 중간에서 끊긴다.
끊긴 자리가 우리 각궁부위 몇칭의 하나인 '후궁뿔끝'이다.
전체 길이는 133cm. 가운데 부분으로 갈수록 의 폭이 넓어져(경주활의 형태가 그랬다) 최고 폭 약 4.2cm로 아주 넓고, 두께는 1.2cm 정도이다.
고자쪽으로 용골형태의 정탈목이 이어진다. '조선의 궁술' 각궁제작에 대한 그림 설명에 확인되지만 요즘 활엔 조치원활에만 미세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심을 놓은 자리에 화피 단장을 하지 않고 밝은 계열의 칠이 되어있는듯 하다. 간각칠궁이란 활이 이 활 아닐까?
줌통은 나무든, 코르크든 댄것 없이 도피를 감았다.
시복은 선조 하사품 시복과 형태가 비슷하나 더 커보인다.
<시복의 높이가 20cm 정도인 임란 전후 선조 하사품 시복 - 투피스인것을 제외하면 거의 흡사한 형태이다>
박물관에 남아있는 조선 후대의 활과 달리 고자 부분이 이태조의 활과 같고, 화살집 역시 후대의 초소형이 아닌, 선조하사품과 비슷한 실전용인 대형 시복임을 볼 때 그 연대가 제법 오래된 물건들인것 같지만,
혹 병인양요때 약탈해간 물건들과 함께 우리 군사들이 쓰던 것을 가져간 것일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아직은 함부로 연대를 예측할 수 없고 더 알아보아야겠다.(실물을 만져더 보고 요모조모 자세히 관찰한 발견자 JJ씨는 약200년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소장 156cm 목궁 인데 소재만 차이날 뿐 고자의 형태나 전체적인 모양이 비슷해 보인다>
이 활을 발견한 독일인 JJ 씨에게 추가사진을 요청하였다.
칠지 단장 부분을 떼어냈는지 색깔이 달라 보인다.
도고자의 형태가 요즘것과 별로 차이가 없어보이고, 후궁뿔끝까지 이어진 뽕나무 고자 정탈목이 확연하다.
윗장인지 아랫장인지, 취약한 후궁뿔끝의 각이 떨어져 나갔다.
혹 투피스가 아닌가 확인키 위해 시복의 뒷면 사진도 부탁했지만 없나보다.
추가로 보내준 사진으로 종합하건데, 1800년대의 '향각궁/후궁'으로, 군용으로 쓰였을 화피단장을 하지 않은 전투용활일것이다.
화살집은 표면재질을 볼 때 돼지가죽으로 보이며 투피스인지는 빠리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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