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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서僞書가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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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한국고대사·고고학 연구소 제10회 콜로키움 초록불님 글에서 트랙백

오랜만에 위서僞書와 관련된 얘기가 나온김에 위서가 무엇이 문제가 되는지, 위서를 통해 역사를 복원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짧으면서도 명확하게 지적한 장학성의 글이 생각났다.

劉炫之『連山』, 梅색頤之『古文尙書』, 應詔入獻, 將以求祿利也. 侮聖人之言, 而竊比河間, 河內之寬討, 君子以爲罪不勝誅矣. 夫墳典旣亡, 而作僞者之搜輯補苴, (如『古文』之採輯逸書, 散見於記傳者, 幾無遺漏) 亦未必無什一之存也. 然而不能不深惡於作僞. 遺篇逸句, 附於闕文, 而其義猶存. 附會成書, 而其義遂亡也. 向令易作僞之心力, 而以採輯補綴爲己功, 則功豈下於河間之『禮』, 河內之『書』哉?
유현劉炫의 『연산連山』*이나 매색梅頤의 『고문상서古文尙書』는 (경서를 수집한다는) 황제의 명령에 호응하여 조정에 들어와 바쳐 복록과 이익을 구한 것이다. 그들은 성인의 말씀을 업신여겼을 뿐더러, 하간헌왕河間獻王이나 하내 여자[河內女子]**와 비교하면 군자는 그들의 죄가 죽어도 싸다고 여길 것이다. 『삼분』과 『오전』[墳典]***같은 고대 서적은 사라졌기 때문에 위작을 만든 놈들이 찾아내서 보충한 것(『고문상서』가 사라진 글들을 채록하고 모은 것처럼 기와 전에 흩어져 있는 것은 거의 빠뜨리지 않았다) 가운데 진짜는 열에 하나도 남지 않았을 것이다. 위작을 만든 놈들을 심히 미워하지 않을 수 없는 진짜 이유가 있다. 만약 단편의 궐문闕文인 채라도 붙어만 있었다면 단편적이라 해도 그나마 뜻은 아직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작자들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마구 견강부회하는 바람에 그나마 남은 뜻도 사라지게 된다. 만일 위작을 만들려는 마음과 힘을 고쳐먹은 뒤 (궐문을) 모아서 보충하는 일을 자신의 공로라고 생각했다면 그들의 공로가 어찌 『예기』에 대한 하간 헌왕의 공로나 『상서』에 대한 하내 여자의 공로보다 아래에 있겠는가?
(『문사통의』 《언공言公 중中》)
* 유현劉炫은 수나라 때 인물이다. 수나라 초에 천하에 남아있는 사라진 책들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청이 올라가자 백여권의 책을 위조하여 『연산역連山易』, 『노사기魯史記』 등의 제목을 달아 수록해서 담당 관청에 바쳐서 상을 받았다. 나중에 고발이 들어왔는데 사면되어 사형은 피했지만, 제명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 하간헌왕은 민간에서 고문을 수집해 경전을 복원했는데, 『예기』·『맹자』 등이 이 과정에서 복원되었다고 한다. 하내 여자는 오래된 집을 허물던 중 벽에서 나온 책을 바쳤는데, 이를 가지고 『상서』를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삼분』은 3황三皇, 『오분』은 5제五帝와 관련된 책이라고 한다.

간혹 위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소리가 이것이다. "위서도 나름의 전승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후세의 내용이 가필된 것이 있다고 해도, 이를 어느정도 걸러내고 과거의 사실을 복원하는게 가능하지 않는가?"
기록은 사람의 인식이 남긴 결과물이다. 과거의 기록이나 사실을 인용한다 해도, E.H.카가 말했듯이 그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인식되어 재구성된 형태로 나타난다. 하지만 후세 사람이 자신을 과거의 사람인양 위장하면서 위서를 쓰는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는지는 계산이 불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과거의 사실을 A가 기록했는데(1차 사료), "A가 이렇게 말했다"고 말한 B(2차 사료)와 "자신이 A인 척 이야기하는" C(위서)의 이야기를 비교했을 때 C의 이야기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은 명백하다.
즉, 기록의 신뢰도와 중요도를 순서대로 매겨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A(1차 사료)>B(2차 사료)>B'(3차 사료)>..........>>>>(넘사벽)>>>>>>....>>>위서僞書

(주의: 물론 이 얘기가 기계적으로 적용되지는 않는다. 사료가치를 위해서는 시간적/공간적 접근성, 작성자의 공정성과 합리성, 사료의 전래내력 등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시간적으로 접근한 1차 사료라 해도, "작성자의 공정성/합리성" 문제로 인해 신뢰도가 2차 사료보다 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설령 2차 사료라 하더라도, 1차 사료가 소실되어 전해지지 않는 경우 2차 사료가 1차 사료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한다.)

정리해서 말하면, 기록에서 "작성자의 인식"이라는 요소가 작용하기 때문에 위서는 사료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백발 양보해서 위서가 과거의 사실을 기록했다 하더라도, 장학성의 지적대로 그것은 처음 기록을 남긴 사람의 인식보다도 위작자의 인식이 반영된 결과이다. 즉,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부터 거짓말을 한 사람이 내놓는 인식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위서를 파 봐야, 그 안의 내용이 사실이건 거짓이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기초적인 사항부터 거짓말로 시작한) 위작자의 인식세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위서에 대한 장학성의 말은 결국 다음과 같은 것이다. "백발 양보해서 (지금은 사라진) 과거의 사실기록이 위서에 전해져있다 해도, 우리는 그것이 진짜인지 신뢰할 수 없다. 정말 전해진 부분이 있었다면, 위작자는 우리가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게 훼손한 역사범죄자일 뿐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위작자의 죄는 죽어도 싸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니까 이상한 논리로 위서를 쉴드치는 것은 잊혀진 역사의 진실을 복원하여 역사의 진보를 이룩하는게 아니라, 2백여년 전 역사학을 들고와도 본전도 못 건질 소리 ㄳ

그러니 저처럼 건전한 사고를 지니신 분들은 위서를 들고 이상한 소리하지 마시고 덕질을 해야 합니다. 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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